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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리고 보면 두 사람은 간조 때의 해변에 웅크린 채다. 뭍을 빠져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몸 어디도 소금물에 젖지 않고서.

두 사람은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봤다.

 

어린 고래가 배에 묶여 말라 죽고 있어. 두 사람의 손에 들어온 흑진주가 울면서 말했다. 바닷바람인지 거센 파도인지에 휘말릴 적에 들은, 유일하고 다정하며 애달픈 목소리였다.

 

도와줘. 흑진주에 맺힌 바닷물이 손바닥에 떨어지며 외쳤다. 그건 바다의 눈물이었다.

 

-

 

뺨에 묻은 모래들이 알알이 아리게 정신을 할퀸다.

여긴 어디지? 처음 들어야 했던 생각은 바다의 구슬픈 목소리에 떠밀려 가라앉았다가, 뒤늦게 부상한다. 물안개에 잠기지 않았음에도 머리속은 당장 부옇고 탁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바다는 이제 일몰을 집어 삼키고 있었고, 석양은 길고 긴 그림자와 빛을 그들에게 선사하고 있었다. 선물은 아닐 것이다. 붉게 빛나는 바다는 곧 빛 한 점 없는 암흑으로 변할 테니까. 하늘도, 이 근방 전부가 밤의 자락에 잠길 것이다.

자세를 바로 하여 일어나면 그제야 육지에 도달했음을 실감한다. 방금 전까지 파도 위에 위태롭게 떠 있던 게 맞았나 보다. 꿈도 환상도 아니라, 진짜임을 두 사람은 몸으로 실감했다. 바다에 긴급히 적응하느라 머리는 어지러이 울렸고, 버티기 위해 새롭게 써야 했던 근육들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중이었다.

데스브링거는 일단 그런 상태였다. 그는 눈 앞에서 숨만 내뱉고 있는 사제를 본다. 상체를 겨우 세운 모습이, 며칠간 지켜본 그녀 치고는 처량했다. 그녀는 아마 조금 더 피로할 것이다. 육신을 불사르며 신성을 내뱉은 결과겠지.

그럼에도 사제는 끝내 일어난다. 절그럭, 무거운 갑옷 소리가 동반된다. 젖지 않았음에도 쇠가 삐걱이는 소리는 가라앉을 때의 소음 마냥 소름 끼쳤다. 마지막으로 깊은 숨을 들이쉬고, 이내 내쉰 인퀴지터의 태는 지쳤으나 올곧다.

 

두 사람은 저들이 어디에 있는지 일단 살피기로 하였으나, 곧 걱정을 덜게 되었다. 간조 때만 드러나는, 이 도시 앞 해변 언저리라고 결론 지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새로운 걱정에 직면해야 했다.

지금껏 이런 공간이 있었는 줄 몰랐다면 그들은 만조 때 제법 고생을 해야 할 터다. 어쩌면 고생 수준으로 끝나지 않고, 목숨을 걸어야 할 수도 있었다. 그들은 모래투성이 바닥을 지나 천천히, 그들이 있는 곳의 더 깊은 부분을 탐사하려 하였다.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진 건 동굴이다. 수직으로 넓고, 수평으로도 마냥 좁다고는 할 수 없는, 바다가 수십 만 번을 깎아 만든 동굴이다. 다행이도 입구에 비하자면 그리 깊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혹은 두 사람이 멋대로 그리 생각하고 있거나.

 

“이거, 잠깐만.”

 

골이 깊게 파여 마치 해구를 닮은 동굴은 벽에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신성을 쥐어 짜내 빛으로 삼은 인퀴지터가 벽에 가까이 다가간다. 벽의 상처를 짚은 데스브링거는 그 빛에 조금 미안해하면서도 빠르게 설명을 잇는다.

 

“이건 배가 지나다닌 흔적이에요.”

“배? 이곳에?”

“확실하진 않지만 거의. 아니면,”

 

무어라 더 말할 틈도 없이, 사제는 조금 더 걸음을 옮긴다. 사제에게서 나오는 희미한 빛이 영롱히 동굴 안을 비추었다. 사람이 촛불을 닮을 수도 있구나, 짧은 생각이 도적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그 생각은 정말 짧았다. 왜냐하면 이윽고 드러난 동굴의 다른 벽면과, 안에 남은 유해들이란.

 

“이건…!”

“…우리가 여기로 온 것도 바다의 뜻이네 뭐네 하는 겁니까요?”

 

골 때리는 바다다. 미간을 짚는 꼴이 꼭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들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문양이며 낙서, 모든 게 사제에게는 징그럽게 익숙하였다. 단어 하나 하나가 사제의 신성력에 고통을 내뱉고 있었고, 검은 물이 눈물처럼 뚝뚝 흘러나오고 있었다.

유해는 또 어떠한가. 그들은 아주 낮부터 이 도시의 해안 구석을 점거하려 시도한 작자들을 알고 있다. 그 자들이 입은 검은 로브들이나, 불길한 표식들을 두 사람은 잊을 래야 잊을 수 없었다. 정신없는 일이 아무리 일어났어도 악마숭배자와 관련된 사건은 똑바로 기억하고 있어야 했다.

 

추정컨대 여긴 악마숭배자들의 은신처다. 다만, 그래.

 

“용케 쓸려 가지를 않았네요.”

“죽었음에도 말이다.”

 

모든 흔적이, 이곳은 오래 전에 버려졌다 말하고 있었다. 저벅, 한 걸음 한 걸음이 신중하다. 두 사람은 방금 막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백골을 지나갔다.

 

“…여기, 뭐 마기로 도배되어 있다거나 합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와아악!”

 

저런 유해가 바다의 흐름을 거스르고 존재하려면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머릿속에서 해답이 몇 개 나오질 않았다. 더군다나 주변에 툭툭 튀어나온 힌트는 더욱 생각을 하나로 좁히게 만들기도 하였다. 그래서 물어본 거였는데 이게 웬걸, 정답일 줄이야.

데스브링거는 일전의 전투에서 무모함과 계산 사이의 선을 타며 목과 심장을 갈취한 때를 생각한다. 사기가 팔에 들러붙고, 등에 늘어지며, 척추를 슬그머니 핥기 시작하던 그 순간 말이다. 죽음이 찾아오지도 않았으나 사기는 죽음을 강제로 만들어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는 그리 느꼈다.

폐가, 가슴이, 덜그럭거리는 느낌을 받을 적에 그는 악마숭배자들의 광기와 비례하는 위력을 말 그대로 온몸으로 체감했어야 했다. 뒤늦게 입가를 더듬어도 이제 거기에 피는 없다. 깨끗하게 치료한 장본인을 옆에 두고서 그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마저 다른 흔적을 살피기로 했다.

 

“이거는…? 잠깐만요.”

 

씨이… 그가 작게 욕을 중얼거리려다 도로 삼켰다. 대신에 깨달음을 얻은 헛숨 하나가 푹 내쉬어진다. 그가 살핀 것은 동물의 유해였다.

크기는 한 번에 눈에 들일 생각조차 못 할 정도로 컸다. 데스브링거는 기민한 감각으로 이 해안 동굴이 생각보다 약한 구조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바람소리가 들어차는데 왜 벽으로 새냐고. 벽에 금이라도 갔어? 턱, 발에 걸리는 것은 그 거대한 뼈의 일부다. 이건 앞지느러미 뼈다.

빠르게 그림이 그려졌다.

 

“이거 고래 뼈예요.”

“고래라면.”

“그리고 이 해안 동굴에서 아마 죽었을 거고.”

 

고래는 육지에서 유폭한다. 데스브링거는 이 고래가 이곳에서 죽었으리라 확신했다. 그렇지 않으면 동굴이 이 따위로 취약해졌을 리가. 불안하게 들리는 바람소리가 그에게 초조함을 안겨주었다.

 

“일단 여길 정화하도록 하지.”

 

사제는 사제가 해야 할 일을 한다. 악마숭배자의 흔적, 마기로 가득 차 바닷물에도 그 어떤 유해 하나 쓸려가지 않고 그대로 남은 기이한 동굴 안. 고래의, 뼈. 그녀는 바다의 속삭임을 상기한다. 어린 고래가 말라붙어 가고 있다고.

어쩌면 그 뼈는 유령선의 망령 것이 아닐까? 지나친 도약인가.

 

동굴 안이 일순, 거대한 광휘를 머금는다. 데스브링거는 순간을 포착한다. 이 공간의 넓이와 깊이를 눈대중으로 재어 볼 찰나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집어넣는다. 동시에,

뼈가 부서진다. 산산히 부서져 내린다. 이젠 용도가 없어졌다는 듯이, 흐른 시간에 미리 사라졌어야 마땅했다는 듯이, 스러져 간다. 파도의 포말보다도 더 산산히, 부서져 없어진다. 사제는 마지막으로 흩어지는 고래의 유해에 작은 축복을 빌어 주었다.

바다의 지혜로운 생물이라 전해 내려오는 게 저 고래다. 그렇다면 부디, 저 뼈의 주인 또한 신의 곁으로 가 안식을 맞이하길.

 

톡. 둘의 발치에 굴러 내려온 것 하나 있다. 숨통이 트였다는 신호라도 되는지, 데굴 굴러 오는 것 하나 있다.

진주다. 고래의 뼈가 사라진 자리에서 굴러 떨어진, 고운 진주였다. 너무 맑은 빛을 띄어 손을 대는 것조차 꺼려지는, 눈물과도 같은 진주.

그러나 사제는 그것을 끝내 손으로 주워 섬긴다.

 

“예전에 이 도시에, 진주가 고래의 눈물로 만들어 졌다는 설이 퍼졌더라지.”

 

등대지기가 말해 준 이야기다. 인어의 눈물과 관련된 전설이 와전되어 퍼졌다고. 사제는 아련한 표정으로 맑은 진주를 내려다 보았다.

 

“어쩌면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겠어.”

 

도적이 이 동굴의 크기를 가늠하는 동안, 사제는 동굴 더 깊은 곳을 빛으로 비출 수 있었다. 빛의 근원이 되는 이는 얕은 동굴의 끝자락에 쌓인 유해의 형체를 보았다. 하얀 뼈들을 보았고, 뼈가 사라지는 순간에 톡, 구르는 소리를 내던 진주들을 보았다.

간혹 고래들이 육지 암초에 실수로 걸쳐 지거나 하여 생을 달리 하는 경우는 있다 한다. 어쩌면 두 사람이 동시에 본 유해 또한 같은 맥락으로 세상을 떠난 따뜻한 피 중 하나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제는 생각을 달리 하였다.

도적도 엇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탄 범선은 이 동굴에 들어오기 참 안성맞춤이었고, 그 배에겐 해괴할 정도로 커다란 그물이 있었으니까.

 

정황 몇 개가 두 사람을 감돌았다. 적막이 동시에 찾아왔으나 둘은 신경 쓰지 않기로 하였다. 바다가 그들에게 말한 바는 이걸 위한 것이었나.

정화가 완료된 동굴은 쓸쓸했으나, 이제는 제법 아늑해 보였다.

 

찰랑, 물이 다시 들어 차기 시작하는지 희미한 물소리가 들린다. 데스브링거는 추론의 공상에서 현실로 돌아와 입구를 쳐다본다. 태양을 가늠하고 싶어도 그건 이미 기울어 바다에 삼켜진 채다. 어둠이 동굴 안으로 바닷물과 함께 스미고 있었다.

 

“이럴 때가 아니에요, 샌님!”

“바다가 다시 차오르는 건가!”

“나가야 한다고!”

“나도 안다, 뺀질이!”

 

소리를 일찍 들어 망정이라고 도적은 가볍게 종알대기 시작했다. 조금만 늦게 눈치 챘어도 바닷물이 그들의 발끝을 아슬아슬하게 적시는 수준이 아니라, 발목 언저리를 간지럽히며 서서히 두 사람을 바다의 망령으로 만들 준비를 했을 지도 몰랐다.

사제는 광휘가 모든 동굴 안을 비출 적에 희미한 틈새들을 보았다. 도적이 했던 말을 상기한 그녀는 새삼스럽게도, 그의 유능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럼에도 여유 넘치는 행색이 제법 꼴받기도 하여 그녀는 끝내 투덜거림으로 말을 마무리하고 만다.

 

“알아낸 내용이나 마저 정리할 생각이나 해라!”

“아이고, 암요, 그럼요.”

 

두 사람은 뜀박질했다. 필사적으로 뛰었다. 그러나 간과한 사실이 있다면 여기에 올라갈 길이라 할 마땅한 길목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사지를 움직여 벽이라도 기어 오를 태세로 바다를 피했다. 만조는 빠르거나 느리거나의 속도 이야기를 할 수 없이, 눈치 채는 순간 돌이킬 수 없어질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이다. 서두르지 못한다 한들 급함이라도 잔뜩 챙겨두고 있는 게 그나마 도움이 되었다.

 

그런 그들의 앞에 작은 조각배 하나가 떠내려 온다. 구명 보트. 뱃삯 하나 내지 않아도 되는, 잘 마르고 사공 하나 없는 배 하나.

 

두 사람은 그렇게 노를 저어 귀환했다. 해변과 도시가 완전히 어둠에 삼켜진 다음에야 두 사람은 아주 정식으로, 땅을 다시 디뎠다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었다.

 

-

 

인퀴지터는 바닷새의 깃으로 마련한 깃펜을 빠르게 놀렸다. 내일로 미루고 자시고 간에 당장 필기할 수 있는 내용을 필기해 놓고 싶었다. 깃털의 회색빛 끝이 요란하게 움직였다.

 

그녀는 성으로 돌아오자 마자 몸을 씻었고, 그 다음으로 성주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성주와의 대담 과정에서 그녀는 추가적인 기록을 요청할 수 있었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성주의 멱살을 잡지 않아도 괜찮게 되었다.

이백 년 전 이곳 앞바다에서는 해적이 춤을 추었다. 진주조개의 산지였으며 해적들의 주 약탈지였으니 이는 그녀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등대지기가 한 말을 곱씹어 보았다.

상어나 고래가 배를 치고 가는 일이 빈번한 해역. 그럼에도 이곳은 해상 교역이 활발하여 지금껏 무너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바다의 포식자들이 치고 다닌 것은 상인의 배가 아니다.

 

상인 일을 하는 작자들 중에는 해적들과 안면을 튼 자들이 없지 않다. 그들이 가지고 노는 구역을 지나기 위해서라도, 혹은 그 자들과 친교를 맺었다가 바다에게 끝내 먼저 내쳐져서, 여러 사유로 해적과 거리를 조금 두었으나 얼굴을 알기는 하는 자들은 늘 존재했다.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게 도시로, 사람들에게로 흘러들어 오는 건 어렵지는 않았겠지.

포식자들이 괴롭힌 건 해적들이다. 이 도시를 약탈하려 하는 해적들. 그녀는 종이 구석에 꼬리지느러미를 낙서해 본다.

 

데스브링거가 정보 길드를 추가로 털면서(복원 중인데 그래도 되느냐고 물었으나 까고 있다는 반응이었다.) 오래 된 행정 문서 여럿을 발견해 내는 데 성공했다. 그 행정 문서는 엄밀히 말하자면 진짜 행정 문서는 아니었다. 검은 문서, 세간에 알려지면 안 되는 문서 따위들. 그런 것들이었다.

거기에 있는 건 온통 익명 처리된 이름들과, 혹은 당당히 해적단이라 명시된 이름, 그리고 납부 품목이 있었다.

고기다. 바다의 고기들. 물고기를 묻는 것이 아니었다.

 

붉은 살코기들.

고래들이다. 해적들이 제 항해를 방해하는 빌어먹을 바닷것을 얼마나 같잖게 봤을 지 그녀는 그려 보았다. 불 보듯 뻔한 결과였다. 그녀는 유령선의 어딘가에 화약과 작살총이 있으리라 확신했다.

향, 그래, 개중에는 용연향이 있었다. 고래의 죽음으로 나오는 가장 값비싼 물질. 진주 이야기는 여기서 파생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데스브링거도 저가 서류를 훑을 적에 그 말에 동의했다. 사각사각, 지금까지 그와 대화하고 정리한 내용을 한 종이에 옮겨 적느라고 깃펜은 정신이 없었다. 정신없게 끝이 갈라지고 깃이 갈라질 정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폐사는 무엇인가? 그녀는 어렵사리 그 이유를 악마숭배자로 짐작했다. 어쩌면 해적들이 악마숭배자와 손을 잡았는지도 모르겠다. 악마숭배자들에겐 늘 많은 양의 피가 필요했고, 해적들은 길목을 차단하는 살아있는 암초 따위를 없애길 소망했을 것이다. 과정을 그녀는 추론할 수 없었으나, 그녀는 해안 동굴의 광경을 끝내 목도하지 않았나.

유해들. 생선의 뼈와 달리 앞지느러미가 선명히 남은 뼈들. 그 사이로 굴러떨어지는 진주들.

아무래도 그건 해적들이 이 바다를 약탈한 뒤의 대가일 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문장 사이 사이에 제 사견을 덧붙여 갔다. 그녀가 보고 배운 이 도시와, 해적들과, 악마숭배자들은, 그럴 수 있었다. 그녀는 배움이 빠른 사람이었다.

 

뚝, 다시금 그녀의 깃펜이 부러진다. 잉크가 손을 적시고, 종이의 일부를 적신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이건 그러니까 치밀어 오르는 기분 나쁜 감정의 기원이 무엇인지 찾으려는 필사의 노력이었다. 그러니 그녀는 미련 없이 펜을 새 것으로 교체하고 종이를 빤히 노려 볼 뿐일 터다. 이게 보고서였다면 그녀도 이러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셔진 종이에 잉크가 침범한다. 바다에서부터 온 먹이 침범한다. 눈물이 침범한다. 바다의 눈물이 육지에 발붙인 그녀의 하얀 바다를 온통 어지럽힌다.

 

그녀는 그렇게 하도록 두었다. 그래야 마땅했기 때문이다. 바닷새의 깃털이 마저 떨어지도록 두었다. 그것이 마땅했기 때문이다.

 

인퀴지터는 새 종이와 깃펜을 두고 그제야 차분히 보고서를 작성해 나갔다.

하늘에 켜켜이 쌓인 양떼구름은 눈과 빙하가 깨진 것을 허공에 붙여 둔 모양새였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구름들은 하늘의 파도가 되어 흘러가기를 택했다.

 

아침이다. 태양이 형체 하나 하나를 유심히 빛으로 빚어주는 한편, 그림자를 만들어 친히 저로부터 도망칠 곳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곳은 유난히 그림자가 짙었다. 물이 반짝이는 만큼 태양이 잘게 부숴져 사람들에게 내비쳐 지는 것도, 강렬한 태양빛이 만드는 짙은 그림자도, 이제는 꽤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녀는 이 도시에 도착한 이래로 늘 제 방에서 새벽기도를 하였다. 신전이 있었다면 기도실을 사용했을 지도 모르겠으나 이곳에는 신전이 없었다. 항구도시는 신전 대신에, 바다의 풍요를 믿는 곳이기 때문에.

그러니 오늘만큼은 아무래도 성호경을 긋고 신에게 기도를 올려 본다. 신이시여, 부디 당신의 종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하소서. 바다의 일을 제가 감히 돕게 하소서. 이곳의 눈이 되어 불행을 거둬들이고자 하나니, 이곳의 손이 되어 저 바다에 있는 어둠을 마저 씻기고자 하나니. 간청 하나이다, 제가 바다로 걸음함을 밉게 여기지 마옵시고.

그리고 제가 저 바다의 미지에게, 신비에게 구원을 바란다 하여도 미천히 여기지 마옵소서.

 

햇볕이 유난히 따사롭다. 그리고 바닷바람은 그녀를 품어주듯이, 소금기 하나 하나 떼어 주겠다고 득달같이 달려드는 듯하였다.

잘 익은 공기가 훈훈했다. 바다 내음에 은은히 잘 말린 이불 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하늘은 구름에 조각이 나 있다 하더라도.

그러고 보니 사제와 도적 또한 이 도시에 폭풍처럼 있지 않나? 마치 옛 소문의 그처럼.

이 도시를 온통 휘젓고 다니는 둘을 보며 도시 사람들은 그리 생각했다. 처음에는 해적들을 들쑤시고, 중간부터는 바다를 들쑤시고, 지금은 또 무얼 할까? 천방지축인 아이를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른 시선이 두 사람을 휘감는다. 이제 와 잊힌 옛 소문을 아는 이는 거의 없지만, 아는 이들은 두 사람 위에 팔척 장신의 살아 숨쉬는 폭풍과도 같은 이를 상상해 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지금, 바다로 나아가고 있다. 또한 옛 이야기 속 그처럼.

 

“이게 맞는 겁니까?”

 

그는 자뭇 신중한 사람이었다. 사제와 함께 이 도시 안에서 일어난 일을 정리하면서 이렇게 곧장 바다로 나아가는 걸 염두하지 않았을 리가. 그러나 정보의 중심에 선 망령에 대한 단서는 아직 한참 모자란 상태였다.

바다에 빠지거나, 이번에야 말로 공격을 당하거나, 이런 가능성은 낮다고 보았다. 그가 수없이 구른 진창 속에서 마주한 인간들만큼 그 망령은 불안정했지만, 그 속내를 전부 내리누르고서 끝내 칼끝 하나 저희에게 안 닿게 한 절제력이라면 믿을 만도 했다.

일단 살았고. 그 시점에서 데스브링거에게는 차라리, 이런 저런 의심보다는 그 망령이 가진 고민이 무언지 조금 더 알아보고 확실히 대화를 잇는 게 낫지 않겠느냐 의견을 내었다. 종종 잘못된 문장은 앞으로의 대화를 모두 단절시키기 마련이므로.

그러나 사제는 의견이 달랐다.

 

“모르는 것이 있다면 가서 물어봐야 하는 게 아닌가?”

“그 때도 하나도 몰라서 물어봤는데 제대로 된 대답 하나 못 들었잖아요?”

“그럼 다시 물어봐야 하지 않겠나?”

“그게 그렇게 됩니까요.”

 

가타부타 하지 않고 정론으로 들쑤시는 것이 지극히, 그가 봐 온 사제였다.

 

“그 때와 똑같은 대답이 돌아오면 어쩌려고요?”

“질문을 바꾸면 되는 것이 아닌가?”

 

뭐지, 계속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을 하고 있는데. 어쩐지 신경이 조금 날카롭더라니 틱틱대면서 이렇게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나 보다. 데스브링거는 괜시리 제 뒷머리를 긁으며 생각을 반대로 돌렸다.

둘 모두 바다로 다시 나가는 데에 간단한 결정만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둘은 아직 사회 안에서는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사람들이었고(한 명은 극구부정 하겠다만.) 바다의 미신을 처음 접한 사람들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함을 처음 마주했다면, 다시 마주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 법이었다. 다만 두 사람에게 필요한 시간이 짧았거나 혹은 이 때가 아니면 안 된다는 강한 확신이 둘을 떠밀었거나, 그럴 뿐이다.

바다 바람이 강하다.

 

“…뭘 물어보려고요?”

“생각 중이다. 네 녀석은?”

“와, 똑같은 상태네요.”

 

이 참에 한 세 번은 더 물어보죠? 무얼 말하는 거지? 전에 물었던 거요. 한 세 번 반복하면 짜증나서라도 대답해 주겠죠, 그 망령도. 하여튼 뺀질거리는군.

아무렴 두 사람의 왁왁거림은 멈추지를 않았다. 선착장으로 가서 단촐하지만 튼튼한 배를 수배할 때 까지도, 항해 계획을 대략적으로 정할 때 까지도, 전부.

 

-

 

급하게 수배한 작은 배는 오후에 다다라서야 출항했다. 해적들이 바다로부터 도망쳐 도달한 육지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출발하는 배였다.

선원 몇은 유령선의 저주니 뭐니 하면서 지레 겁을 먹고 있었지만 나머지는 일단 땅 밖을 벗어나 대해의 품으로 벅차 들어간 것에 감격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벌써부터 술을 꺼내네 마네 하는 걸 보자면, 됨됨이 한 번 유쾌한 사람들이다.

해적들은 대부분이 정리가 되고 있었고, 그들을 이 도시까지 끌고 온 소문이 사라지면 완전히 가라앉을 것이다. 사제는 혹시 몰라서 새벽 기도 이후에 육로로 보낸 편지를 떠올렸다.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도 신전 측 인물들을 어떻게든 불러 놓았기에.

그러니 당장 걱정해야 하는 건 지금의 항해이고, 저 놈의 술꾼들을 뜯어 말리는 일이었다.

 

“그만 들이키십시오!”

 

키가 흥겹게 돌아가는 꼴을 보자니 없던 멀미도 생길 것 같았다. 사제는 이곳 해적들을 전부 정리하면 그 다음에는 고해소라도 차려야 할 지 고민했다. 저 주정뱅이들이 조금이라도 영혼의 안식을 얻는다면, 먹는 술은 줄어들지 않겠는가.

동그란 키가 돌아간다. 계속 돌아간다. 사제가 선원들을 짐짝 치우듯 작은 배의 선원실에 넣어 놓는 동안 도적이 이변을 감지한다.

 

“잠깐, 저게 저만큼이나 돌아갈 일이에요?”

 

그들이 지나는 바다는 아직도 평화롭다. 배가 지나다니기 적당한, 얕은 파도 소리만이 나는, 바다를 처음 맞이하는 이라면 늘 상상한 풍경만이 거기 있었다.

그러나 배 위에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키가 반대로 안 돌아갑니다!”

“이런 미친, 배를 잘못 골랐나?”

 

동시에 사제는 넣어 놓은 선원들을 도로 깨워 끄집어 내야 할 지 생각한다. 그러나 사제의 신성은, 그녀가 신전에서부터 빚어 내린 감각은 이 상황이 어디서부터 유래하는지 불쾌하게도 일러주고 있었다.

 

“…배에 문제는 없을 거다. 네 녀석이 골랐으니.”

 

도적의 물건 보는 솜씨는 일단 그녀보다 좋았으니, 그가 무어라 더 말하기 전에 확실히 짚고 넘어가자. 이건 배의 문제가 아니라는 완곡한 표현이기도 했다.

굳은 사제의 표정을 보고 데스브링거는 이게 일전의 악마숭배자 문제와 같은 흐름을 가지겠구나 예측하였다. 그는 조타수의 목덜미를 냅다 낚아 채어 마저 선원실로 던져 넣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몰랐으니, 일단 안에 있는 게 제일 나을 것이란 판단이다.

뱃사람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겠다만. 흘러가는 생각을 뒤로 한 채로 데스브링거는 인퀴지터를 곁눈질했다.

 

“이상한 주문이라도 있습니까?”

“아니, 음…”

 

방향은 어디인가. 이 끔찍한 기운을 가진 존재는 어디에 있지? 앞, 옆, 뒤, 모두 아니다. 창공도 아니다. 그렇다면.

배는 묶여 있으며, 바다에 떠 있다. 바다는 광활하고 알 수 없는 공간을 가진 곳이다. 찰랑, 파도 소리 사이로 움직임이 잡혀 온다. 그림자가 언뜻 보이는 것도 같았다. 데스브링거는 저 사제의 미간 골이 깊어져 있는 걸 관찰한다.

 

“엎드릴깝쇼.”

 

이건 필히 옳은 대답이고 판단일 것이다.

 

“모두 엎드려!”

 

한 박자 빠른 대응을 한 데스브링거는 갑판을 신명나게 두드렸다. 아무래도 작은 배인 만큼 이만치 두드려도 알아서 이해할 것이다. 사제의 우렁찬 말이 뒤이었으며, 동시에 수면 위에서 거대한 괴물이 솟구쳐 올랐다.

 

부패한 날것의 냄새가 났다. 부정한 괴물이 깊은 바다 기슭에 고이 잠들어 있다가, 바다의 의지를 거스르고 신성한 기운을 향해 이빨을 들이밀었다.

 

“신이시어!”

 

쿵! 배 전체가 격하게 떨려 온다. 일부가 부숴졌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멍멍한 소리가 한 차례 지나가자 그제야 갑판에 남은 이들은 괴물의 형체를 확인한다.

저걸 형체라 과연 칭할 수 있던가? 두족류의 형상을 한 괴물은 여러 전설에서 소개되어 왔지만, 눈 앞에 막 도착한 포악한 존재는 두족류’만’을 닮은 것이 아니었다. 바다에 사는 생물을 이리저리 기워서는 숨 쉬라 질책하는 형체이지 않나.

끔찍한 몰골에 순간 숨소리가 조용해진다. 쉬이 소리 내기에는 다닥다닥, 따개비처럼 붙은 눈알들이 갑판을 향하고 있었다. 섣불리 움직이기에는 저 괴물의 덩치가 덩치였다. 등장하며 일으킨 물보라 만으로도 배가 안 부서진 게 용하나 느껴질 정도로 거대했다.

그러나 저 괴물은 결국 공격할 것이다. 저 괴물은, 마기를 품고 있었고, 이지가 없는 부류라면 악마와 진배없다. 그리고 이 배 위에는 악마와 가장 대척점에 서 있는 사제가 있다.

휘둘러진다. 저 거대한 육체를 이룬 것들 중 하나는 휘둘러질 것이다! 데스브링거의 모든 신경이, 예민한 감각이, 본능이 경고를 날린다.

 

“흐읍!”

 

그러나 이는 한 차례 무산된다.

쾅! 분명히 굉음이 일었다. 이 바다 위의 모든 상황에 익숙해지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듯하다. 데스브링거는 뻣뻣하게 굳었던 몇 초 전의 자신을 힐난하며 급히 자리를 옮긴다. 이럴 때일수록 더 유연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괴물, 아니, 바다 속에서 치솟은 악마의 공격은 사제의 거대한 방어벽에 의해 막힌다. 아무리 저 몰골을 하고 있어도 신성에 타들어 가는 건 아주 싫나 보다. 그 꼴을 보니 악마숭배자들과 뭐가 다른가.

사제는 저가 세운 방어벽을 더욱 견고히 하였다. 이곳은 육지가 아니며 지켜야 하는 인공 땅덩어리가 존재했다. 그 안에는 저들보다 바다는 잘 알아도 이런 악마를 상대하기에 어려울 민간인들 뿐이다.

그렇다면 더욱 견고히 밀어붙일 수밖에!

 

“어린 양에게 축복을!”

 

번개가 내리친 것도 아니건만 그녀는 마치 하늘에서부터 빛을 내려받는 것 같았다. 방패와도 같이 형성된 벽은 곧 작은 배 전체를 감싸는 하나의 돔으로 진화했다.

쿵! 다시 한번 더 저 육중한 악마의 말단부위가 배를 두드릴라 치면, 동시에 작열하는 소리가 들려 온다. 그리고 바다 또한 요동친다. 공격을 받지 않는 것은 좋으나 물결에 배가 삽시간에 위험을 오가는 건 그다지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조금 더 큰 배였으면 좋았나? 데스브링거는 생각을 멈춘 뒤 다른 생각을 하기로 했다. 이미 항구를 떠나 온 이상 큰 의미가 없었다. 지금은 저 악마를 어떻게든 무르게 할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이를테면,

 

서걱, 그는 가까이 다가온 말단부의 끝을 얌전히 돌아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 이렇게. 잘라낸 끝이 펄떡거리다가 성역으로 지정된 배 위에서 징그럽게 스러져 가기 시작했다. 끔찍한 냄새는 성역의 황금 물결에 파묻혀, 바다 바람에 휘날려 흩어졌다.

이 정도면 그래도 괜찮았다. 괜찮나? 아직 말단부는 더 휘두를 수 있다고 의견을 피력하고 있었다.

 

그럼 이번에는 사제 또한 손을 보탠다. 콰직! 영역을 침범하려 하는 또 다른 말단부에게 심판의 뭉치를 먹인 것이다. 뭉그러진 끝부분은 성화에 휩싸인 채 바다로 꿈지럭거리며 가라앉는다.

 

“샌님, 성수 있어요?”

“성수? 아, 기다려라. 네 칼에 간단한 축복을 해 보겠다!”

 

성수는 없단 뜻이군, 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녀는 천연덕스럽게 성스러운 물을 그의 온 몸에 가볍게 뿌렸다. 이럴 거면 진즉 뿌려야지, 하고 싶어도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 애초에 생각도 못 했으니.

그의 단검에 성수 몇 방울이 방울졌다. 축복은 그 정도로 충분했다. 눈 앞의 사람은 귀중한 증표를 가진 이였으니.

 

“에라이 진짜, 생고생 죽여주네!”

 

기합 비슷하게 제 불만을 투덜거린 데스브링거는 이내 돛대를 타고 올라가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기 시작했다. 출렁이는 배에서 낙하를 기반으로 한 공격이라 함은 곧, 한 순간에 바다로 미끄러질 수도 있다는 뜻이기에.

그러나 그는 죽음을 가져오는 자다. 칭호를 괜히 얻은 자가 아니었다.

 

서걱! 제대로 축복받은 검날이 말단부 둘을 종결시킨다. 성화에 휩싸인 것들 둘을 꼴 좋게 보며 그는 다음 공격을 예비한다.

 

하지만 둘이 상대하는 악마도 마냥 바보는 아니라서.

쿠웅! 배에 둔중한 충격이 인다. 이건 배 위를 가격한 것이 아니다. 뭍에서 온 사람들은 생소한 충격에 당황하며 배 위를 굴렀다. 튕겨져 나가지 않은 것이 기적일 정도다.

 

배 밑이다. 저 망할 존재가 나타난 곳, 바다 밑에서부터 울린 충격이다.

빌어먹을! 데스브링거는 욕을 짓씹었다. 이대로 몸을 숨긴 채 배 밑만 요란하게 공격하는 순간 이곳에 선 모든 인간은 끝장인데.

 

“샌님, 이봐요, 일단 갑옷부터 벗어요. 그 메이스도 인벤토리에 넣어요!”

 

사제는 갑옷 무게에 휘청거리면서도 끝내 일어서는 데에 성공했다. 얼마나 힘이 좋은 거냐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그 전에 전할 말은 확실히 전해야 했다. 사제는 이미 메이스를 집어넣은 채로 갑옷을 내던지듯이 벗어 제꼈다.

물에 빠지면 갑옷을 입은 사람들은 확정적으로 죽는다. 그 꼴은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안면 튼 지 얼마 안 된 사이라 한들 지금 두 사람은 한 배를 탔으니.

 

쿠웅! 다시금 그들의 단촐한 배 전체를 뒤흔드는 울림이 일었다. 서있는 것 자체에 위험이 따를 정도로 거셌다. 아무래도 노선을 이 쪽으로 선회한 것 같다. 그림자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고, 튕겨져 나갔을 때 저것에게 잡히지 않게 각오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두 사람은 급히 돛대에 매달렸다. 난간에 매달렸다간 춤추는 파도와 함께 온 몸이 곡선을 그리며 바다의 영역으로 홱 넘어가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제는 새삼 이 배가 이 정도로 버티고 있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겼다. 작은 배였지만, 그럼에도 옹골차다. 생각해 보자면 그 악마와 배의 크기를 가늠했을 때, 용골이 안 비틀린 게 용할 정도다. 쿠웅! 다시 한번 탑승객을 으깨고 싶다는 악의가 가득한 울림이 일었고, 그럼에도 배는 버티고 있었다.

그래, 이 배는 좋은 배다. 그리고 이만큼 버텼다면 그녀도 곧장 정신을 차려야 했다.

 

파스스 부서지고 있던 금빛 방어막이 순식간에 바다 밑으로 향한다. 그녀의 무거운 방패는 인벤토리 속에 들어가 제 무게를 숨겼으나, 불안정하게 뿜어지는 신성력은 온몸에서 방출되어 바다 밑바닥 심해까지 불을 밝힐 기세였다.

이 바다 위에 휘영청 보름달이 뜬 것 같았다. 말 그대로 황금의 색채를 머금은 물결이 일렁인다. 그 밑에서 인간과 배를 농락하려던 악마는 꺼지지 않는 성화에 요동을 치고 있겠지.

 

콰르륵, 좋지 않은 전조가 들린다. 다시금 엎드릴 시간이다. 자세를 낮추라 도적이 그녀를 당기면 다시금 그 빌어먹을 괴물은 물기둥과 함께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징그럽게도, 지치지도 않는지. 이러다가 먼저 지쳐 나가 떨어지는 건 이 쪽이 될 지도 모르겠다.

뭍사람이 물 위에서 이리저리 뛰노는 건 체력에 좋지 않았다. 멀미가 없다시피 한 둘이었으나 이 정도의 맹공이면 뭍사람이건 바닷사람이건 간에 혼이 먼저 빠져나가지 않던가. 그걸 필사적으로 붙잡으며 견제를 계속 하고 싶어도 얍삽하게 구는 건 저 쪽이다.

말단부가 다시금 축성된 단검에 스치운다. 파스슥, 흩어지는 마기에 힘을 얻고자 한다. 그럼에도 축축 처지는 팔을 더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사제는 반복되는 농락에 메이스를 계속 꺼내 들었다 말았다 하는 피로감이 묘하게 거슬리는 모양이다.

 

객관적으로, 힘겹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아직은 견딜 수 있었다.

 

거센 풍랑이 순간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걸 쥐어 버린다. 도달한 바람은 찬찬히 얕은 회오리를 만들며 얼굴 면면을 훑는다. 손가락으로 뺨을 훑는 것처럼, 바람은 제법 다정했다.

바람은 그러나, 곧이어 거대한 악마를 찢어 발길 듯이 스치우며 해수면을 난폭하게 만들어 버린다. 단지 공기의 흐름 하나 만으로 두 사람은 저 악마가 만드는 물의 폭발과 엇비슷한 수준의 물보라를 얻어 맞아야 했다.

사방으로 온갖 곳으로 물이 튀었다. 하늘에 고인 바다는 이내 안개가 되어 시야를 덮는다. 거기에 기꺼이 구름이 내려 앉는 것을 허락하듯, 태양은 여즉 쨍하다.

양떼구름 한 조각이 부서졌다. 기어코 산산히 부서져 형체를 잃어버렸다.

 

숨이 막힐 듯이 폐에 바다가 적셔진다. 두 사람은 물 위에 있었는데도, 그들의 갈비뼈가 부드러이 바다에게 잡아 먹히는 기분을, 그들은 느낀다.

허억, 조여오는 숨에 두 사람은 순간 행동을 멈춘다. 갈 곳을 잃어버린 두 손은 다시금 돛대에 닿는다. 파도를 닮은 물안개는 태양 아래에서도 지독히 서늘했다. 목덜미 언저리에 솟은 닭살은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 숨을 고르다 보면, 이번에 마주한 것은 생각보다 건조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만다. 비교적 옅어 시야라는 개념이 존재할 수 있는 상태에서 두 사람은 빠르게 상황을 다시 파악하려 노력했다.

 

저벅. 무거운 발소리.

동시에 두 사람은 기어이 공격에 노출된다. 그림자라는 힌트를 받을 수 없어진 결과였다. 묵직한 공격이 돛대를, 둘을 향한다. 안개를 뚫고,

 

그 다리마저 꿰뚫어 잘라 버리고, 안개를 양단해 바다에 수직선이 그어진다. 물안개가 덩어리 져 반으로 흩어진다. 정확한 궤적이 선으로, 틈새에 스미는 빛으로 보인다.

파도 물결이 빼곡한, 거대한 검이 보인다. 쿵, 옅은 발굴림 소리가 지척에서 들린다. 안개를 첨예하게 가르는 날의 소리가 들린다.

새로운 생의 기척이 느껴진다.

 

“미련하게도.”

 

밤바다를 닮은 음울하고 거친 목소리가, 물안개 사이를 비집고 울린다. 두 사람은 뒤에 따라붙은 혀 차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망령…!”

 

희망, 의아함, 그 외의 갖은 감정들이 뒤섞인 목소리가 목 안에서 쥐어 짜인다. 두 사람이 탄 작고 옹골찬 배에 서슴없이 발을 디딘 자는 분명히 그들이 아는, 유령선의 망령이다.

 

“수급을 갈취하려 하나.”

“갈취라니, 이보쇼! 택도 없는 소리를!”

 

분명히 공기는 무거워졌다. 하지만 그 무게감은 아무래도 악마에게만 그렇게 받아들여 졌나 보다. 두 사람은 저 망령이 적어도, 화끈하게 악마 하나를 작살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하이고, 이게 뭐랍니까.”

“오히려 잘 된 일일 지도 모르겠다만…”

“원래 목표는 달성한 건 맞죠. 근데!”

 

덜컹, 작은 배의 선원실이 요란스럽다. 민간인들한테는 악마가 등장한 데다가 본래 목표하던 유령선까지 겹쳤으니 아주 제정신 붙잡기 어려울 것이다. 차라리 술에 취해 헛것이나 보고 있다고 믿는 게 나을 정도로!

소란에 망령의 고개가 조금 돌아간다. 그건 분명히 사제와 도적에게 눈짓하는 것이렷다.

 

“…뭡니까요.”

“항해에 나와 이 망종 둘만 오는 게 말은, 안 되지 않나.”

 

해적은 아니군, 절도 있게 다시 돌아가는 고개에 두 사람은 경을 쳤다. 아, 그게 그냥 질문 끝인 거구나. 일부러 다시 찾아온 건 눈에 안 들어오는 거구나?

이 두 사람이 휴식도 마다하고 하룻밤 새에 일을 벌인 노력이 참으로 허망해지는 것 같았다. 그 대신 저 악마 놈이 눈 앞에 서 있었다. 망령의 목적은 저것이겠지.

약간의 탈력감, 조금 뾰족해진 성질머리, 파도에 떠밀리느라 지친 영혼은 다시금 두 사람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저 망령이 악마의 몸 절반을 바다 깊이 가라앉혀 파도가 비교적 잠잠해진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지만, 아무튼.

 

“만일 정말 수급을 갈취 당하면 어쩔 테냐!”

 

그리고 그녀는 다시금 신성력을 끌어 올렸다. 작열통이 사제의 온몸을 적셨지만, 반복하건대 그녀는 능숙한 사제였다. 어느새 잔잔해진 바다는 그녀가 다시금 갑옷을 챙기기에 충분한 환경이었다. 방패와 메이스를 다시 들고, 훨씬 더 효율적으로 배와 사람을 보호하기에도 아주 충분한.

화악! 광휘가 주변을 가득 물들인다. 밤의 물안개로 가득찬 좁은 해역에 또한 보름달이 대낮부터 차오른다. 범위는 점점 좁아져 달과 같은 은은한 빛은 태양이나 별을 닮은 번쩍임을 닮아 버린다.

 

“그리 되면 이야기를 마저 할 것인가, 망령!”

“샌님, 이 도시 사람들 닮았어요.”

“시끄럽다, 뺀질이!”

 

어느새 배움이 좀 과해진 듯싶다. 그러나 저 이에게 질문할 것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떠날 이처럼 구는 망령을 부득불 붙잡으려면 어쩌겠는가. 이 도시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이 도시 사람의 행태를 조금 닮아 떼를 쓸 필요도 있지 않겠나.

그 과감함에도 망령은 고요를 유지한다. 바다의 침묵이 부표처럼 그의 겉에 휘몰아친다. 이내, 옅은 숨이 내뱉어졌다. 명백한 생의 기척이다. 서늘한 숨이여도 그건 살아있는 자의 것이다.

 

“살고자 한다면 집중하도록.”

“…받아들인 겁니까?”

“살아남은 뒤에,”

 

사악, 아주 부드러운 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를 문득 닮은, 그런 소리.

뒤늦게 확인하면 그건 파도를 품은 검이 악마의 남은 절반 중 일부를 또 다시 침몰시키는 소리였다.

 

“입을 놀려라.”

 

데스브링거는 이제 제법 침착해진 눈치로 살핀다. 저건 수락이야. 뾰로통한 얼굴의 사제를 두드리면 사제 또한 온전히 전사의 것으로 태를 바꾼다.

악을 짓뭉갤 시간이다. 신과 바다와 사람의 징벌이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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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quaRyuichi Sakam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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