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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개비같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눈이 마침내 모두 떨어져 나간다. 문어를 닮았으나 그 덩치는 비교할 바 되지 않는 다리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마기를 가득 품은 괴수는, 악마는.

마침내 중심부에 별과 같은 빛이 박히고 파도를 닮은 일격을 맞으며 부서진다. 생물을 닮았음에도 그 끝은 죽은 유해가 시간에 급히 흩어지는 몰골이라, 데스브링거는 이질감에 얼굴을 살풋 찡그렸다.

 

콱, 승리를 선언하는 냉혹한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마침표가 그들의 작은 배 위에, 자국을 새기며 찍힌다.

그리고 물안개 너머에서부터 거대한 그림자가 샘솟는다. 유령선에 묶인 존재를 기꺼이 데리러 왔다고 쇄도한다. 천천히 부서져 가는 악마의 몸체를 아예 산산조각내며 유령선은 나타난다.

사제는 그 범선의 옆면에 새겨진 이름을 본다. 대악마의 그릇에게 명명되는 이름. 그녀가 지금껏, 저 외로운 영혼을 차마 함부로 동정하지 못한 이유.

 

“망령, 저 이름을 아나?”

 

숨 돌릴 틈 없다. 돌릴라 치면 저 망령은 달아날 것이다. 유령선이 친히 저 망령을 데리러 오기 위해 바다에서부터 기어나오지 않았나.

망령은 배 옆면에 낡지도, 썩지도 않은 이름을 본다.

그레트헨. 배 겉의 모든 흔적은 옛날 옛적에 썩어 없어졌어도, 저 이름만은 주홍글씨가 되고 낙인이 되어 그를 묶었다. 그것이 제 이름이 아닌데도, 이제 불릴 것 하나 없는 망령은 차라리 망령이란 호칭이 더 편했는지 얼굴을 와락 구긴다.

두 청년으로서는 처음 보는 얼굴이다.

 

“모른다.”

“…모르나, 실례를 범할 뻔 했군.”

“그러나 저 배의 옛 승객들이 저 이름을 숭상한 점은 안다.”

 

그리고 그 부분은 망령이 아주, 싫어하는 요소이기도 한 모양이다. 검을 쥔 손이 유달리 바르르 떨렸다. 칼끝부터 그의 팔뚝까지 산 자의 육신에서부터 불어닥치는 분노의 파도다.

 

“일이 있었습니까?”

 

순간을 놓쳐서는 안 될 일이다. 데스브링거는 이 찰나, 감정이 드러난 때를 놓치지 않고 비집어 들어간다. 무슨 일이 있었으니 눈 앞의 망령이 저 모양 저 꼴이 되어 지금까지 있는 것이겠지. 살아, 아니 죽어, 음.

생의 기척이 이토록 선명한데 대체 뭐라고 표현을 해야 할지. 데스브링거는 약간의 머뭇거림 끝에 말을 골라 내는 데에 성공한다.

 

“배의 크기를 보자면 많은 승객들이,”

“그것들은 모두 실어 날랐는데.”

 

말의 허리가 끊긴다. 망령은 비틀어진 입꼬리를 숨기지 못한다. 아, 이건 등대지기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구명보트에 오직 목 위의 것만이 전부 담겨진 채 육지에 닿은 이야기.

 

“…몸은 모르겠군.”

 

저 자가 이 배의 승객들을 전부 처형한 모양이다. 따라붙는 말이 살벌하다. 몸의 행방은, 그도 모른다. 머리만 주워 던져 넣은 작자에게선 언뜻 은은한 광기마저 흘렀다.

함부로 말조차 붙일 수 없어 안개의 틈바구니에 정적이 차오른다.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 사제는 입 안 살을 짓씹으며 제가 늘어 놔야 하는 말을 한다. 물어봐야만 했던 것이기도 하였다.

 

“승객은 누구였지?”

“…뭐, 해적들 아니었습니까?”

“악마숭배자였나?”

 

대악마의 이름을 딴 배, 그 위에서 유일하게 뛰노는 자. 사제로서는 의심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을 터다. 데스브링거는 물안개가 서서히 팽팽해지는 걸 느낀다.

 

“그것이 해적이든, 악마숭배자든.”

 

이윽고 떨어지는 말은 무감함 속에 짙은 살의를 담은 채다. 밤바다를 닮은 언어다.

 

“바다에 악의를 품었다면 죽어 마땅해.”

 

고요 속에 살벌함이 내려앉는다. 길 잃은 분노가 아스라히 휘몰아친다. 무거운 공기가 청년들의 폐와 심장을 느슨히 쥔다.

살아있는 자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간다. 이에 망령은, 아주 오랜만에 조금은, 뒤로 물러나 볼까 한다. 바다의 속삭임으로 움직이고 제가 태우지 못한 감정으로 움직인 지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났으나.

 

“…저 이름이 악마의 것이라면, 그 버러지들이 그 따위 족속의 인간이기야 했겠지.”

“그런가…!”

 

대번에 사제의 표정이 밝아진다. 기실 망령은 제대로 기억하지는 못하였으나, 배 위에 한 때 존재했던 죽여도 모자랄 자들의 행적을 생각하자면 악마라고 칭해도 이견은 없었다.

 

“아니, 그렇게 기뻐하면 어떡해요!”

 

그러나 사제에게 있어 이 사실은 여러가지로 다행인 편이다. 눈 앞의 영혼이, 악마와 큰 관련 없다는 사실을 바로 증언받은 셈이니까. 그녀는 이제야 외로운 사람을 똑바로 볼 수 있음에 감사한다. 신이시여, 바다여.

그걸 황당하게 보는 데스브링거가 있으니 결국 사제는 표정을 바로 하였지만.

 

“아, 크흠. 수사에 도움을 주어 감사… 하다.”

“하다아?”

“왜 그러냐, 망종.”

 

이내 청년들은 저들끼리 다시 살판이라도 났는지 드잡이질을 시작한다. 망령에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오랜만의 소란이었고, 평화였다. 타인의 숨소리와 제법 정겨운 말씨름 소리에 저가 그저 섞여 있다는 것이 꼭,

꼭 숨이 붙은 것 같지 않던가, 어울리지 않게도.

 

계속 눈치를 살피던 데스브링거는 이런 풀어짐을 또한 알아챈다. 아까보다 느슨해진 공기가 절로 헤아려 진다. 아니 하지만, 달리 뭘 더 물어보라고? 한 차례 힘겨운 전투가 지나간 이후에는 머리를 굴리는 게 상당히 버겁단 말이다.

게다가 이런 느슨함의 경우는 조심히 접근해야 하는데. 제대로 묶이지 못한 배 안의 대포는 해적보다도 안의 선원들을 먼저 으깨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저 망령의 것 역시, 까딱 잘못하면 통으로 이 시간을 날려버릴 수 있었다.

 

“…저, 망령 나리.”

 

그러니 우선 호칭부터. 제법 곰살궂게 말을 붙이니, 유령선의 망령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살벌함을 주변에 두른다. 여기에 빙하가 다 흘러내려오네, 도적은 일부러 능청을 떨어 보기로 하였다.

 

“나리?”

“뭍 것들은 이만 돌아가라.”

“아니, 진짜 매몰차시네!”

 

데스브링거에게는 나름의 불확실한 뭔가가 있었다. 저 망령이 적어도 저희를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아주 일전에, 저를 해적 나부랭이나 일개 살인마로 오해하였다가 그냥 놓아준 것도 그렇고. 바다 위에서 저와 사제 둘이 복닥거리는 걸 얌전히 돌려보낸 것도 그렇고.

잠깐, 돌려보낸 게 누구의 의지지? 그는 품 안에 고이 모셔 놓은 반짝이는 보석 하나를 기억해 낸다.

 

“당신!”

 

그리고 사제도 거의 동시에 떠올린 모양이다. 흰 손수건에 곱게 싸인 검은 진주가, 그녀의 투박한 손 위에서 희미한 오로라를 빛내고 있었다. 바다의 눈물이 흘렀던 표면이다.

사제는 도적을 곁눈질한다. 아무래도 이때껏 저만 경어를 쓰지 않는 점이 신경이 쓰였는지, 호칭 변경을 하며 슬쩍 말을 붙이는 모습에 나름 고민을 한 것인지,

 

“바다의 뜻이라 한 건 당신입니다. 그리고 바다는 배의 어린 고래가 죽어간다 이르셨습니다!”

 

정중한 말씨가 그 내용을 휘감아 담고서는 말뚝처럼 박힌다. 배에 묶인 유령이 에메랄드를 들이부은 듯한 눈을 마주한다. 얕은 해변을 닮은 눈.

그에게는 퍽 안 어울리는 눈이다. 거대한 범선도, 그도 깊은 바다에나 어울리지 물이 얕은 곳에서는 죽음 외엔 답이 없는 존재이다. 회색 외눈과 와인을 닮은 빛깔의 안대가 휘이, 방향을 돌린다. 시선의 행선지는 이제 오롯이 유령선이다. 떠나겠다는 의지가 가득한 사람의 등은 저 멀리 펼쳐진 바다마냥 넓었다.

또한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기다려 보십쇼. 선착장 아래 해안 동굴에 그 악마숭배자들의 흔적이 있던 건 압니까?”

 

급할수록 머리는 점점 차분해지고, 지쳤다면 남은 체력을 머리에 전부 쏟아붓는다. 그 여파로 데스브링거는 그냥 그 자리에 냅다 주저앉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하던가? 저 망령이, 그 무겁고 똑바르던 걸음이 멈춰선 게 중요하지.

그들은 여전히 한 배에 있다. 작고 옹골찬 배 위.

 

“거기 고래 시신이…”

“아아아, 저 사제 나리가 거기 있는 유해를 전부 정화하고 축원하고 그랬단 말입니다요!”

 

사실인데 고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혹 방향이 다른 곳으로 새어 또다시 저와 사제가 투닥거릴까, 도적은 재빨리 말을 더 잇는다. 그러려 했다.

둘에게서 등진 자의 고개가 슬쩍 돌아간다. 거기에서 도적은 고민을 읽어낸다. 아니, 고민보다는 조금 더 깊은 망설임이다. 망설임이라는 단어 마저도 감히 어울리지 않는, 조심스러워야만 하는 상처.

이내 망령의 속삭임이 들린다. 단언컨대 그건 영혼에서부터 새어 나온 속삭임이다. 구슬픈 휘파람과 다를 바 없는.

 

“…전부?”

“아, 예? 예…”

 

그는 저 목소리가 유난히 탁하다고 느꼈다. 바스라질 것처럼 거칠던 목소리가 기억에 선명한데도, 지금 들려온 것은 넉넉하게 물기가 어려 있었다.

바다 위의 망령이 어울리지도 않던 건조함에서 순간 벗어났다. 둘은 그 얼굴을 본다. 짧은 놀라움이, 옅은 안도가, 아직도 걷히지 않은 안개 같은 음울이, 그의 표정을 새로 그리고 있었다.

 

“다행이군.”

 

짧은 대답이다. 그러나 뒤따르는 행동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제 검을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던지고는 작은 배의 난간에 걸터앉았다. 무언가를 이야기할 것처럼 보이는 선상 위의 음유시인과도 닮았고, 아무 이야기조차 하지 않을 버려진 배 위의 선장과도 닮았다.

 

“…너희는 그러기 위해 왔나.”

“그러, 뭘요?”

“그, 망령. 악마숭배자들은 축원이 아니라 정화를 행했으니 안심하도록 해, 하십시오.”

 

어설픈 존칭이 공기에 웃음 같은 실금을 내어도 이제 망령은 거기에 뿌리 박힌 듯이 군다. 떠나는 이처럼 굴던 방금 전과 완전히 반대되는 터라 두 청년 모두 어리둥절한 상태이다.

 

“사제.”

“왜 그러, 예.”

 

그녀는 대답하면서도 뒤늦게, 저 자가 처음으로 그녀를 호명했음을 인지한다. 그래, 처음으로. 아주 이질적이게도.

 

“그럼 이제 망령을 정화해야 하지 않나.”

 

동시에 두 청년의 숨이 조용해진다. 꺼내어진 말이 귓가에 때려 박혀 졌을 때 둘은 깨닫고 싶지 않은 사실을 깨닫는다.

저건 선고다. 미련이 사라지고 체념마저 붙잡을 필요 없어진 자의 종언이다.

데스브링거의 본능은 이 과정이 매우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래, 이렇게 끝나면 다 좋게 되겠는데, 끝맛이 떫어질 것이라고 그의 감이 눈짓했고 짧은 세월동안 쌓인 죽음과의 경험이 손짓했다. 한 때 복수귀였고 지금은 억지를 부리는 양 삶을 이어가는 자의 염원이 눈을 떴다.

 

“잠깐만요, 진짜로? 이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을 겁니다.”

 

난간에 기대선 이는 팔로 아슬아슬하게 그 상체를 지탱하고 있었다. 검은 코트 사이로 비죽 튀어나온, 해적의 것인지 귀족의 것인지 모를 나풀거리는 흰 레이스가 섪게 나부꼈다. 이제야 파도처럼 일렁일 수 있다고, 흩어질 수 있다고, 가만히 앉은 자세의 그 자는 외려 온 몸으로 외치고 있었다.

어서. 침묵을 지키는 망령은 고요히, 에메랄드빛 눈을 본다. 얕은 바다를 닮은 두 눈.

 

해변 모래톱에 묘지 세운 동족을 끝내 따라가겠구나, 아, 틀렸다, 저가 동족들을 모두 바다로 밀어넣었으니.

나는 이제 돌아간다. 바다의 품으로 돌아간다. 마지막 적막을 즐기며 영원한 침묵을 기다리는 자의 눈은 눈꺼풀 아래에 갇혀 굳건하다.

그러나 순간 떠 진다. 잘못됨을 깨달은 자의 눈은 어느 때보다 날카롭다.

 

쿵! 순간 작은 배가 다시금 요동친다. 용골이 덜컹이고 갑판이 비뚤어지기 직전으로 치닫는다. 힉, 예상하지 못한 일격에 얌전히 앉아 있던 도적은 순식간에 갑판 끝까지 굴러갔고,

사제는, 사제에게는 무거운 갑옷과 거대한 메이스가 있었으며, 그대로 바다로.

숲을 닮은 눈이 그걸 뒤쫓는다.

 

거센 물보라 속에서 인영 하나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솟아오른 것은 저로 대신하라는 듯 비웃는, 머리 여럿 달린 뱀이고 죽은 고래 껍질을 뒤집어쓴 게다.

진주를 야금야금 깨물고 있는, 바다에 잠들어 있던 괴물이다. 가라앉은 사체를 파먹고 사는 청소부였어야 할 것들. 변절자들에 의해 변절하여 뒤틀린 존재들.

 

“-너!”

 

망령은 새로이 샘솟는 분노를 입는다. 그 이름에 걸맞는, 망령과도 같고 악귀와도 같은 표정을 짓는다. 그 표정은 이내 파도와 같은 검을 잡으며 서늘함 하나로 갈무리된다. 칼날과도 같은 날벼림이, 물안개의 틈새에 촘촘히 이빨 단다.

기긱, 그를 지금껏 묶고 있던 거대한 범선이 움직인다. 배를 떠받치고 있던 바다가 일렁인다. 파도를 담은 검이, 그걸 쥔 억센 손과 팔이, 죽지 못해 살아가는 자의 새로운 분노가 망망대해에 재해를 만든다.

그는 이제껏 수많은 해적들의 배를 저 빌어먹을 배로 분쇄해 왔다. 그렇다면 저 씹어죽여도 모자를 치들에게도 그리 하는 게 마땅하지 않나.

바다는 동의했다. 파도가, 바람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치미는 심해가, 그의 분노가 동의했다.

 

범선이 떠오른다. 작은 배를 뛰어넘어, 무지개와 해일을 그리는 거대한 바닷길을 타면서. 고래가 허공을 뛰어넘듯이.

영원이 느껴지는 한 순간에, 그는 움직인다. 그의 검이 파도와 배의 지휘를 멈추고, 오롯한 검날 하나로 화답을 한다. 밤과 겨울로 빚은 침묵과도 같은 대답이, 마침표를 찍기 위해 횡을 긋는다.

 

바다에 초승이 휘몬다.

마침내 그 저주받은 배가 부숴지는 소리가 들렸다. 수장의 끝이다.

이백 년 전의 일이다.

바다는 그 날부터 유난히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바다가 어떻게 웅크리고 줄어드느냐 묻는 이가 있다면 너는 아마 뭍것이다. 너는 앞으로도 평생을 모르겠지만, 나를 포함하여 물에 사는 모든 존재들은 바다의 기류가 불안을 가득 싣고 있다는 걸 알았다.

물고기의 아가미에 방울이 점점 적어지고, 산호들이 하나 둘씩 희게 변하고 있었다고, 어린 상어 하나가 참방이며 말했더라. 저도 옅은 물 싫어하는 주제에 산호까지 살필 구석은 있었던 모양이지. 내가 있던 무리의 가장 큰 고래가 웃었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다. 바다의 불온함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생명의 불씨가 대양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음을, 차가운 길과 따뜻한 길이 혼란스럽게 엮이고 있음을. 어느 때보다도 우리가 사는 이곳이, 아주 낯선 공간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우리는 알고 있었다.

나의 첫번째 후회는 그 시발점이 어디인지 정확히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나는 무리에서 공회전하던 어린 개체였다. 이를 인정하고 넘어가지 아니하면 안 되겠지. 나의 반쪽과 그 반대편의 한쪽 눈은 햇빛에 약하게 태어났다. 기실 가죽 자체가 두꺼운지라 아주 신경은 쓰지 않았다만, 배가 희고 등이 검은 게 곧 규칙인 고래들 틈바구니에서 이리 태어나면 무리 사이에서건 그 바깥에서건 눈에 띄기 마련이었으므로.

그러나 아낌은 충분히 받았다. 나는 적어도 그리 생각한다. 낯설고 어린 개체를 서툴게나마 보듬던 거대한 꼬리들을 나는 기억한다. 성깔머리 나쁜 범고래들과 부러 한바탕 싸우던 나날은 내게 잊지 못할 일이 될 것이다.

설령 내가 그리 애정 받지 못한 이라도 나는 그저 그리 여기기로 결정했다.

차라리 상실해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지금에 이르러서, 회고마저도 고통스러운 지금에 이르러서, 그렇게 하겠다는데.

 

떼죽음이 일어났다.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가, 그건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한가지 그저 기억하는 바 있다면, 아주 거대한 범선이 바다 위 모든 햇볕을 그림자로 가려 버렸다는 것. 나는 그 범선의 이름을 똑똑히 기억한다… 지금 와서야 잊고 싶어졌다만.

 

나의 두번째 후회는 내가 참으로 나약했다는 점이겠지.

나는 아마 가장 먼저 노려졌다. 무엇에 쓰려 하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내가 작살을 맞았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지독히 아팠고, 피냄새에 이끌려 오는 같잖은 것들은 귀찮기 짝이 없었다.

내가 무어라 했던가. 나는 무리 안에서 그래도 보호를 받는 개체였다고. 그런 일이 일어나니 무리는 또한 바다에 일어난 불안을 급히 떠안고 옮겨받아 삼켰다. 어쩌면 그게 그 찢어죽여도 모자랄 놈들이 원하는 바였으리라.

불안 하나에 무리에서 하나씩, 바다 연안으로 이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하나, 또 하나. 우리의 눈물은 저 바다에 가라앉아 진주가 되리라. 고래의 노랫소리는 부르는 이 점점 줄어들어 그 소리 점점 잦아들기만 하였지. 내 상처가 모두 회복된 날에 그 노래를 부르는 고래는 나 혼자 뿐이었음에 비참함을 느꼈다.

아, 나는 내 무리의 마지막을 기억한다. 마침내 불안이 극에 달했을 때 저를 제한 나머지가 어딘가로 향했음을 나는 기억한다. 내 무리의 모든 고래들은 아마 그 범선을 부수거나, 아무튼 바다 위에 뜬 모든 배를 부수려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모두 작살에 파먹힌 채 모래톱 위로 쓸려 왔겠지. 그 결정을 말리지 못한 것이 내 세번째 후회다. 나는 연안에서부터 밀려오는 짙은 부패의 냄새를 맡았어야만 했다.

 

그 날 나는 심연에 가라앉았다. 아니, 공중에 떴던가.

걸어올라 갈 다리를 어떤 경위로 얻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그 때의 나는 뻗을 손과 다리가 생겼음을 인지하고 곧바로 그 부숴져야 마땅한 배를 찾기 위해 움직였을 뿐이다.

그것들의 수급을 한 땀 한 땀 쟁여 수장조차 허투루 되지 못하도록.

내가 그 때 웃었던가? 그 배 위에 굴러다니는 진주를 생각하면 아마 울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죽지를 못하고 있다. 살지도 못하고 있다. 물안개가 시야에 보일 적에 마지막으로 나는, 내 오른쪽 반신이 그 배와 함께 못써먹을 정도로 피투성이 된 걸 아는데도.

 

돛대에 꽂힌 어린 고래는, 나는, 그래. 그렇게 말라 죽어 가고 있어.

 

-

 

배에 묶인 고래는 그럼에도 헤엄쳐 갔다네.

그 이후로도 한참을 바다를 떠돌며, 검은 깃발 안에 해골을 그린 자들을 전부 바다에 제물로 바쳤다네.

그리 해야만 화가 풀려서, 그리 해야만 제 가족들의 유품을 마저 장사 지낼 수 있어서.

제 감정을 마저 바다에 가라앉힐 수 있어서. 말라죽어 가는 고래는 그리 버텼다네.

 

바다에 가라앉아 가는 사제에게 바다가 들려준 이야기이다. 바다 속에 가라앉아야 했던 어떤 복수귀 이야기. 피와 눈물이 굳어 만들어진 흑진주의 울음소리. 유일하게 남은 고래의, 기억하는 이 없는 노랫소리.

분명 숨을 참아야 했다. 그녀에게는 아가미도 없었고 지느러미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야기 속을 유영하는 동안 그녀는 그 무엇도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이 숨을 쉬고 있는지, 헤엄치고 있는지, 걷고 있는지, 가라앉고 있는지.

다만 뜨겁다. 차가운 바다와 달리 그녀의 심장은 뜨거웠고 눈가가 너무나도 뜨거웠다. 시큰거리고 아팠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못했기에 저 바다 수면 위 누군가는 평생을 아직도, 메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끝내야 하지? 그녀는 이미 망령에게서 답을 들은 바 있다. 아니, 그녀가 제안한 것이기도 하지 않던가.

 

깊은 심해에서부터 중력이 역으로 쏟아진다. 파도를 닮은 검이 바다를 부른다. 그녀를 막 잡은 손은 따뜻한 자의 것이다. 단검을 잡아 투박한 손, 그 주인의 눈은 휘둥그레 떠진 채 무어라 말하고 있었다.

우리 둘 다 숨을 잊어버린 것 같다, 이 망종아.

 

-

 

바다에서부터 활어처럼 건져진 두 청년은 작은 배의 갑판에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정확히는 한 명은 헐떡이는 채로 다른 한 명의 정신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중이라 할 수 있겠다.

사제는 아직 저 밑 심해에 있는 양 고요했다. 그 옆을 지키는 도적은, 숨을 쉬고 있음을 확인하자 안색이 확 피더니, 사제의 입에서 물을 충분히 뱉어내게 한 뒤 아주 가만히, 예민하게 그 곁에 웅크리고 있었다.

이 도시에 도착한 이래, 바다의 가호고 나발이고. 그에게 들러붙은 소금기가 슬 불어오는 바람에 말라붙어 까끌하게 변하고 있었다. 이리 제대로 당한 건 처음인 청년은 겨우 제 창백한 낯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말라붙은 소금 알갱이가 그 희멀건 낯을 대신하고 있었지만.

씨근거리는 숨을 겨우 진정시키니 시야에 들어오는 건 예의 그 망령이다. 그리고 아주 조각났다 싶은 거대한 범선의 흔적과, 배를 비틀어버릴 정도로 지나친 양의 피. 최대한 빠르게 바다에 도로 밥으로 줘 버렸는데도 괴물의 덩치가 덩치였던지, 끝내 그들이 탄 배는 피에 가득 젖고 말았다.

그리고 이 작은 배를 여지껏 떠나지 않은 채 붉은 발자국을 남기는 자가 있다. 배에 묶여 있던 망령은 이제 돌아갈 배가 사라져, 오랜 세월을 벗어나 새로운 세월을 맞이하는 사람처럼 약간의 불안에 천천히 또는 빨리 갑판 위를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신경질적으로 발을 굴러 갑판 및 선원실에 숨은 선원들을 신나게 괴롭히는 건 덤이었다.

선원들, 그러고 보니.

 

“살아 있습니까요? 다들?”

 

뒤늦게 신경을 써 본다. 그러니 치사하다는 욕부터 시작해서 대충 살라고 걸쭉하게 소리 지르는 것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기척으로 보건대 다들 무사했다. 사람 죽이는 업을 하는 그로서는 정말이지, 참 오랜만에 순수하게도 사람 목숨을 삶으로서 신경 쓰고 있었다.

식은땀이 계속 된다. 옅게 깔린 물안개 만큼이나 송골히 그의 등골에 맺힌다. 그 사유서 되는 사제는 혈색이 나쁘지는 않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찌 할 수가 없다.

 

갑옷을 껴입은 사람이 그렇게 무거울 수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데스브링거의 손이 두 눈을 꾹 감싼다. 그렇다면 경고라도 미리 해 줬어야 했는데. 이 중에서 무언가 다가오는 기척을 제일 빠르고 민감하게 잡아내는 것은 그였으므로.

아가미 없는 사람이 뻐끔거린다. 답답함에서 기원하는 신음을 내뱉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다 마침내 토해지는 숨은 소리 없이 그저 깊기만 하다.

정 많은 아이. 어린 고래였던 존재는, 너무나 길어진 삶에도 질리지 않고 눈 앞의 두 청년을 직시하듯 보고 있었다. 정 많은, 아이, 들.

 

그 정 많은 사람 중 암녹색 눈 하나가 그에게 닿아 온다.

 

“…망령 나리도 살아 계시는 구만요?”

 

이상한 문장이 도적의 입에서 완성되었다. 죽어서 떠도는 망령에게 살아 있느냐 묻는 말이라니, 도적도 이를 알고 있는지 눈썹을 꾸물대며 헛갈려 하고 있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하기사 꾸며낸 듯 어색한 질문에, 상대방이 질문해 줄 용의가 없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당사자는 무언가 꿈 꾸는 듯한 눈을 하고 있음에도.

 

파도가 잔잔해짐과 더불어 사제가 일어난다. 고른 숨결을 끌어올려 털어내며 펄쩍이는 것이, 살아 있다고 생생히 말하는 수준이다. 그 옆에 가만히 정적만을 채우던 도적 또한 파르르 놀란다. 거기에 희미한 기쁨이 서린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을 터다.

 

“일어났습니까요?”

“…배인가?”

“예이. 댁이 빠진 바다가 아니고 배 맞습니다요.”

“너… 네놈, 건지러 왔었지.”

 

귀가 막혔는지 거듭 귓가를 매만지던 인퀴지터는, 물 속에서 보았던 수많은 풍경 중 유일하게 현실이라 여겼던 하나를 잡아 붙든다.

 

“그럼 당연하죠. 내가 기척을 못 알아채서 일어난 일이니까.”

“…자책이 오늘 벌써 몇 번째냐.”

“저 그렇게 많이 합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것이 어쩐지 똑바른 그녀의 심기를 자극한 모양이다. 겨우 숨 고른 사제의 표정이 대번 뾰로통해진다.

 

“꼴 보기 싫다! 꼬, 꼴 받는단 말이다.”

 

사실 횟수를 세어 볼 시간도 없고 여력도 없으니 저 말에 대답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저 인퀴지터의 기억 속에서 도적이라는 녀석은 생각보다 자책을 많이 하는, 좀 꼴 받게 하는, 제 또래의 사람이라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걸 황망히 보는 데스브링거가 있다. 이건 대체 무슨?

 

“아! 좀! 됐어요!”

“무얼!”

“아니, 그것보단.”

 

도적은 급히 망령을 곁눈질한다. 시선을 받은 그 자는 관계된 적 없는 사람처럼, 유리된 분위기를 서서히 흘리고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몽상을 한다. 나는 살아 있나?

 

“살아 있었, 군요.”

 

살아 있던가? 느릿하게 눈이 깜빡거린다. 그 난리통에, 그러게, 살아 있나?

어렸던 고래는, 망령은 슬슬 무언가 실마리를 잡는다. 저 질문들이, 살아 있냐는 질문이 살아 움직여 그를 재촉한다. 저것이 그에게 무어라 읽히는지, 어떤 뜻으로 들리는지, 무의식부터 울리는 불안과 전혀 다른 감정을 그는 깨닫는다.

살고 싶으냐, 죽고 싶으냐. 그에게 있어 저 질문의 뜻은 이러했다. 나는 죽고 싶나. 아니면 살아 움직이고 싶나.

함에 망령은 다시금 그 질문이 가져온 깊은 생각의 심연에 빠진다. 현실에 한 명이 눈을 뜨니 다른 하나가 도로 생각 끝으로 가라앉는다.

 

이대로 천천히 가라앉아도 좋을 것 같은데. 한참을 깜빡임 없이 바닷바람 맞던 회색 외눈에서, 건조한 눈물이 굴러 떨어진다. 빛을 잃은 뺨에 엷게 물길 하나가 종단한다.

거센 바다의 울음이, 마찰 참 심해 보이는 바람이 점점 몰아친다. 파도는 한 점 없이 조용하여 다만 잔잔한 물결만이 일고 있건만, 바람은 무언가를 계속 할퀴어 뜯어내려는 듯이 그 춤을 더한다. 돛대에 꽂혔던 어린 고래의 눈물을 거두기 위함일까. 그 눈물과 눈은 간조가 다시 시작된 바다처럼 물기를 잃어감에도.

아, 그는 작은 탄성을 외친다. 투둑, 바람이 끝내 거두어 간 것은 그의 안대이다. 햇빛에 연약한, 산호초를 닮아 아름답게 빛나는 눈. 그가 탔었던 배의 주인이 끔찍한 저주를 내려, 흰자라고 할 만한 것 없이 온통 검게 그슬렀던 눈.

한 쪽이 간조를 이루면 다른 한 쪽은 만조가 되어야지. 안대로 가려졌던 오른 눈에서 새로운 소식이 흐른다.

 

청년들은 망령을 부르다 부르다 지친 채 한참을 그 망령을 지켜보다가, 흐르는 눈물에 숨을 멎었다가, 쓸모를 다한 깃발마냥 저 멀리 날아가는 안대를 좇다가, 그대로 그의 얼굴로 돌아온다.

그리고 둘은 어째서 진주가 고래의 눈물이라는 낭설이 돌았는지 알게 되었다.

 

뚝, 뚝.

혈루, 검디 검은 어둠, 그리고 그 본연이 가졌던 맑은 눈물.

그것이 그러모아져 눈시울에 고이고, 섪도록 마른 뺨에 넉넉히 흐르고, 그의 날선 턱에 맺힌다.

햇빛이 부서진다. 빛에 여리게 태어난 눈이, 더는 불필요하게 울지 말라고. 오직 깊었던 한만이 조용히 흐른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갑판에 어린 고래가 흘린 흑진주가 구른다.

 

“…살아 있다면, 돌아 갑시다.”

 

사제는 그 모습을 보고 나지막히 말한다. 어쩌면 그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 때 당신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눈 앞에 당신은 산 사람처럼 울고 있었다.

나는 적어도 당신이 살아 있길 바란다.

그러니, 돌아가자고 제안해 본다. 그 목소리는 제법 단정하고 말끔하였다. 잔잔한 파도 위에 일정히 울리는 파랑처럼.

고개를 돌린 망령은, 아니, 망령이었던 자는 자신이 끝내 해야 할 일을 정한 듯하다.

 

저 사람이, 내가 살아있다잖아.

죽기에는 당신들의 바다를 아직 헤엄치고 싶어.

 

이제 어렸던 고래는 망령의 탈을 벗었다. 돌아갈 시간이다.

너무나도 오래된 귀향이다.

 

-

 

그들이 항구로 돌아가기 위해 돛을 내릴 적에 망령이었던 자는 갑작스레 바다로 뛰어내렸다. 뭍에서 살던 둘은 이를 일종의 사고라고 여겼으나, 이윽고 배 아래에 깔린 거대한 그림자를 보고서는 의심을 바다에 도로 던졌다.

배에 묶였던 고래는 저를 풀어준 이를 실어나른 작은 배를 제 등에 태웠다. 그를 묶을 것은 아무것도 없으나 다만 탄 사람들의 은혜이고 그 나름의 감사인사만이 바다 밑의 돛이 되어 헤엄쳤다.

매몰차다 여겨졌던 풍랑은 거짓말같이, 등 떠밀어 주듯 그들의 항해를 도왔다. 혹은 드디어 바다 밑으로 돌아온 이 바다의 마지막 아이를 조용히 보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유령선은 더이상 없다. 다만 뭍에 다시 발 디딘 사제와, 도적과, 그리고,

흐르는 눈물이 이제는 온연한 우윳빛으로 변한 고래 하나가 있을 뿐이다.

 

하늘의 양떼구름 너머에서 갈매기가 내려앉는다. 회색빛으로 물든 끝이 어지러이 항구를 장식한다. 그건 환영 인사였다. 바다가 보내는 환영과 작별과 축하의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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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quaRyuichi Sakam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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