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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아는 바, 이곳은 분명히 바다를 숭상하는 곳이었다.

이를 조금 더 납작한 말로 설명하자면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쎄고 쎘다는 소리다. 얄팍한 미신, 그저 허무맹랑한 괴소문, 흘러가면 한 달 내로 묻힐 신비하기만 한 이야기. 신전에서 자란 엄격한 이단심문관에게, 그 지역 고유의 신앙이라면 모를까 미신 정도는 생활 관습의 일부라고만 여겨졌다. 그것도 아니라면 악마숭배자들이 숨어 든 지표거나.

그런데 웬걸, 도적의 조언을 따라 행동했을 때 튀어나온 이야기는 전혀 색달랐다. 미신을 좇아 이곳에 몰려 든 것은 맞지만, 그 행동 방침이 신을 믿고 바다를 믿는 뭇사람들 보다는 몽타주를 보고 범인을 잡기 위해 열중하는 수사관과 비슷하지 않나.

수사관보다 조금 더 적당한 단어가 있을 텐데. 예를 들어, 사기 치기 딱 좋은 인간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꾼들 말이다. 적어도 처음에 그녀가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반복해서 정보가 쌓이다 보니 슬슬 사제를 위해 어여쁘게 꾸민 이야기가 아니라, 이 바다 너머까지 퍼져 버린 비극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바다를 돌아다니는 수많은 배들이, 바다 사람들이 그리도 바다를 부르짖는 이유란 무엇인가.

아주 간단하게도 그곳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들은 바다 위에 배를 띄우고 항해를 해야만 했다. 바다가 부리는 변덕을 전부 뚫어 내고, 그들이 아는지 모르는지도 가늠할 수 없는 망망대해를 목숨을 걸고 횡단해야 했다.

그렇다면 건너지 못한 배들은 어찌 되는가. 사제는 쿵쿵, 투박하고 빠른 걸음으로 성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직 이 자리에 도적은 오지 않았다. 도망쳤는가? 그렇지는 않을 텐데.

설령 그렇다 한들 이 도시에 있는 한 다시 만날 수는 있을 것이다. 발목까지 찰랑이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그녀는 소문과 미신의 종합을 기억 속에서 다시금 끄집어 낸다. 건너지 못한 배들은 어떻게 되는가.

그들은 보물선이라는 이름 하에 바다 아래에 가라앉는다. 그걸 노략하기 위한 명목으로 구조선이 가기도 하였고, 말 그대로 해적들의 먹이가 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는 그래 왔다.

 

이리 해적이 몰리게 된 까닭은 다름 아니라, ‘떠 있는 보물선’ 때문이었다. 가라앉지도 않은 채 다만 항구에서 출발할 적에 품은 보물들을 가득 싣기만 한, 사람 하나 없는 거대한 배. 일확천금의 기회가 널리 퍼졌는데 돈과 도박에 관심 많은 작자들이 오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겠지.

유령선. 그녀는 이곳에 눌러 앉으려 작정한 해적들 사이에 퍼진 이야기를 한 단어로 요약했다.

 

몰린 해적들은 겸사 겸사 이 항구 도시의 고혈을 빨기 시작했고, 약탈을 일삼으며 점점 도시를 장악해 갔다. 케이프 속의 단검이 달빛을 받기 시작할 때쯤 데스브링거의 심문은 어느 정도 끝이 났다. 그는 돌계단을 뛰쳐 올라, 아무튼 이제 한 배를 탄 사람 하나를 찾았다.

시간이 늦은 죄로 그는 이단심문관의 억센 손길에 어깨를 콱 붙잡혀야 했지만.

 

“늦는다!”

“뭡니까요?!”

“왜 이렇게 늦지?!”

“댁이 며칠간 여기에 쌓아 놓은 인간만 몇인데요!”

 

그러니까 제발 이것 좀 놓으라고 아프다며 또 엄살을 부린다. 저와 키는 비슷한 것이 제법 연약하다고 핀잔을 주니 도적은 이때다 싶어, 그러면 요령 없이 저렇게 사람만 산만큼 쌓아 둔 건 누구냐고 투덜거렸다.

그래도 탈출은 안 했군, 사제는 속으로 생각한다. 여차 하면 도망 쳤을 사람이 얼굴을 비추는 건 기꺼운 일이다. 뺀질이처럼 뻔뻔하게 군 것 치고는 맡은 바 할 일을 다 하고 정직하게 돌아오자 약속한 곳에 걸음하지 않았나.

 

“유령선 이야기는 흘러 흘러 들으면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알고 있었나?”

“저야 뭐, 정보 수집이 업인 사람인데.”

 

에헴, 과장된 듯 헛기침을 하는 도적의 콧대가 살짝 높아진다. 수집한 정보를 모으는 과정에서 작게 아옹다옹 다투는 일은 순식간에 일상처럼 익숙해졌다. 그럼 미리 말해 주는 게 낫지 않았나! 큰 소리로 호통을 치니 이런 일도 요령 생겨 봐야죠, 샌님? 하고 받아 치는 것이다.

게다가 당신과는 달리 나는 사람을 쉽게 믿고 자시고 할 수 없단 말이지. 데스브링거의 암녹빛 눈이 사제의 신록을 닮은 눈을 힐끗 본다. 평생 의심의 틈바구니서부터 아주 작은 단서만을 취합해 득달같이 달려들어야 하는 신세인 지라. 저 맑은 눈을 마주치면 돌이켜야 하는 것이 너무 많은 게 바로 자신이었다. 시선을 치우고 표정을 갈무리한 도적은 이어 설명을 시작한다.

 

“원래 이 지역이 진주조개 산지인 건 알고 계시죠?”

“그래, 알고 있다. 성주도 나에게 말했었고.”

 

높임말 어디 갔어요? 눈짓으로 채근하고 싶어도 이단심문관 앞에서 어찌 할 성주는 얼마 없다. 더군다나 그녀는 귀중한 증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 더욱 그럴 것이다. 하여튼 높은 사람이란, 무의식적인 기피 심리가 고개를 치켜 들었다. 어금니를 가볍게 악물어 도로 거두어 버린다. 지금 와서 쓸모 없는 감정은 일단 꺾는 게 맞다.

 

“이백 년 전에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고.”

“맞아요. 그런데 그 당시에 사건이 있었나 봐요. 정보 길드에도 최신 정보로 업데이트 할 때마다 이 지역 관련 정보로는 꼭 있던데.”

“아는 바 있나?”

 

어느새 인퀴지터는 이 지역의 미신에 홀딱 빠진 사람 같았다. 데스브링거는 분명 저가 해적의 본거지를 조건으로 내건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 앞의 사제는, 그건 이제 기억도 안 난다는 듯이 굴고 있으니. 얕은 한숨이 도적에게서 부터 나왔다.

 

“아는 바는 있지만, 그 전에 우선 할 일은 있죠?”

“가면서 듣겠다.”

“뭐야, 안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무슨 뜻이지? 난 애초에 해적의 일과 관련된 모든 걸 듣고자 했을 뿐이다.”

“아, 그러시구나.”

 

지금 빈정댄 건가? 맞습니다요, 빨리 가기나 하죠? 또 다시 이어지는 투닥거림 속에서 달이 초승을 그리며 웃었다.

 

-

 

항구 도시가 엉망이 된 결정적인 이유는 등대였다.

배가 오고 가는 도시인 만큼, 이 도시에서 필수불가결한 공공 건축물이라 한다면 그 누구도 뭐라 할 것 없이 등대를 제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이 도시에 있어서 등대란, 비단 배들의 앞길을 알려 주고 신호를 보내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사람들의 삶까지도 비추어 주는 하나의 별과 달과 태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걸 해적들이 모르지는 않을 터다. 외려, 너무 잘 알고 있는 바다의 무법자들이다. 등대의 중요함을 착실히 아는, 거칠게 사는 법 밖에 모르는 와중에도 그 하나만은 아주 잘 아는 바다 위의 양아치 무리들. 그들은 도시를 점거하기 위해 등대를 먼저 점거했다.

그러니 해안이 천천히 엉망이 되고, 교역이 서서히 끊기는 게 아니겠는가. 인퀴지터는 새삼 자신이 얼마나 미친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새 손님을 맞을 준비가 안 된 항구에 무사히 발을 디딘 것은 과연 신의 안배인가.

등대는 해안가의 깎아지를 듯 높은 절벽 위에 있었고, 그 주변과 절벽 밑에 온갖 판자집들 그리고 불법 선박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소금기 가득 서린 차가운 바람이 인다. 혹은 이 도시를 가엾게 여긴 바다의 안배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바닷새의 둥지 하나 없이 조용한 와중에 데스브링거는, 사제의 옷깃에 묻은 깃털 하나를 솔찬히 떼어 준다. 끝이 회색인 것을 보니 갈매기의 깃털이다. 여기까지 오는데도 모르고 있었나, 맹랑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맹해 보이는 사제를 그는 수풀 속에 숨긴다.

 

“이곳에 있는 건가?”

“적어도 우두머리 하나 정도나 그에 준하는 놈은 있겠죠.”

 

혹은 여길 탈환하기만 해도 이 도시에 막힌 혈류가 뚫려 흐를 겁니다요. 소근, 나뭇잎들이 바람에 떠는 소리 사이로 목소리를 숨긴다.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저희 둘로 되는 겁니까?”

“겁이 난다면 빠져라.”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넌 마저 구할 사람이 있지 않나.”

 

달빛이 순간 사제를 비춘다. 보름이 아닌데도 그 빛이 제법 밝게 느껴지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구할 사람, 그렇지, 있지. 정보원들을 찾아 내서 조금은 독촉하고, 다친 곳이 있으면 치료하고. 만일 해적들한테 팔아 넘긴 정보가 있다면, 다시 말해 배신한 정황이 있다면 기꺼이 칼을 빼 들어야지.

그러기 위해 온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지킬 것이란, 정보가 흐르는 길이 1순위였고 저와 종종 담소 나누던 이들이 2순위였다. 후우, 부자연스러운 바람이 그의 입 안에서 불었다. 저는 이 사제와는 정말로 다른 사람임을 매 순간 실감한다.

 

“됐습니다요. 이렇게 된 거, 뭐.”

“그런가? 정말 괜찮나?”

“…거, 개죽음 당하는 꼴은 못 봅니다?”

 

그리고 사제는 이 도적이 무언가를 각오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죽음이나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단호함이 살풋 느껴지는 목소리는 아까와는 조금 더 명확하고 매끄러웠다. 동시에 조심스러웠다, 그 결정마저 후회할까 걱정하는 사람처럼.

사제라는 직업은 갈팡질팡하는 이들의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절벽 위와 아래가 있다. 빠져나가 혼선을 주는 인간이 있을 거다. 어떻게 해야 하지?”

“…좋습니다. 제가 등대 쪽으로 돌파해 볼 테니, 댁은 탈주하는 것들을 차례대로 으깨 버리십쇼.”

“안 다칠 자신은?”

“다치면 치료해 주십쇼!”

 

투닥거리다가 미운 정이라도 들었는지 그새 서로에게 넉살이 붙었다. 바닷바람은 차가웠지만 이 정도면 견딜 만 했다.

 

견딜 만 하다면 이제, 죽음을 가져오는 자와 이단심문관의 심판이 내리 꽂힐 시간이지 아니한가.

 

-

그 누구도 듣지 못할 소리가 난다. 바다와 가까운 곳에 자리한 대가를 치를 때가 왔다.

판잣집에 개켜진 채 곤히 잠든 이들과 하나씩 일어나 경비를 서겠답시고 불 근처에 가까이 있는 인간들. 그리고 그 모든 멍청이들의 시야 바깥 사각에서 껑충이며 등대로 다가가는 존재가 있다.

어떤 걸음 소리도 허용하지 않은 채 그대로, 아주 필요한 최소한의 피만을 보는 존재. 그는 벌써 쓰러지는 인간의 입을 여섯 번째 틀어막으며 제 길을 거침없이 개척하는 중이었다.

아무리 그가 조용하다 한들 사람의 기척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눈치를 채곤 한다. 특히 이런 해적 같이, 바다의 들짐승처럼 산 것들은 그 본능이 날카로운 편인지라, 최대한 빨리 해치우고 나가야 했다.

일곱 번째 사람의 심장을 꿰뚫고 여덟 번째에게 다가가 마지막 숨결을 들은 직후, 그는 이제 등대의 벽을 타고 있었다. 고요와 어둠은 그의 비즈니스 파트너였다. 여덟 번째 인간은 방금 막 체온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벼랑에 떨어져 그 밑에 정박한 인간들을 놀래키지 않게, 아주 조용히.

갈고리를 걸어 등대의 벽을 타고 꼭대기에 도달한다. 그리 하면 등대의 가장 낮은 층에 있는 것들은 독 안에 든 쥐와 다름이 없다. 높은 곳에서부터 찍어 누르는, 인간이 손수 내리치기 위해 준비한 단두대. 살아 움직이는 유연한 처형도구가 끼익, 문을 열어 등대 안을 천천히 압도하기 시작한다.

 

그 쯤이면 바깥은 슬슬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다. 바깥으로 튀어 나가려는 사람이 바르작대고, 절벽 위와 아래에서 이상한 소음을 느끼고 꿈틀대는 인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한 명이라도 이 바깥으로 나가게 한다면 안 된다. 이게 사제와 도적이 짠 계획이었다.

그러나 당장 침입자를 눈치채고 샅샅이 뒤지려는 인간들 절반에, 흔적이 어느 방향으로 이어지는 지 확인하고 등대로 향하려는 인간 절반인 걸 확인한 인퀴지터는 길목에서 숨은 채 도망치는 자들을 틀어막는 일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번쩍, 신성한 빛이 순간 길목에 벽을 켜켜이 세운다. 나를 보라, 여기 있는 날 보라. 너희가 봐야 할 곳은 이곳이며, 당장 너희가 잡기 쉬워 뵈는 상대는 바로 나다.

거대한 방패가 그녀의 메이스에 카랑, 날카롭게 울리는 소리를 내었다. 인벤토리에서 어느새 그녀는 제 갑옷 또한 갖춰 입은 채다. 이걸로 그녀는 완전히 성벽이 될 준비를 마쳤다. 캉, 캉! 쇠붙이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타종소리처럼 절벽 위에서 메아리 친다.

해적들 일부가 달려들기 시작함에 사제는 이를 지르문다. 이래봬도, 그녀는 싸움을 못하는 인간이 아니었다. 고쳐 쥔 메이스가 자비 없이 휘둘러 지기 시작한다. 방패의 모서리는 누구 하나를 바닥에 쳐박기 아주 좋은 모양새이다.

 

거친 타격음이 울렸다.

 

-

 

그리 해도 탈출한 사람은 있었고, 도시의 심부는 내일 쯤이면 한바탕 혼란에 빠질 것이다. 사제는 미안함을 숨기지 못했으나 애초에 두 명이서 이 정도를 한 게 더 이상한 것이라고 도적은 당부했다. 세상 그 나머지 인력 전부를 버티는 것도 모자라 정말 안 놓칠 생각을 하는 게 더 무서울 지경이라고 덧붙였다.

도적은 그 동안 살려 둬야 하는 인간을 조금 눈여겨 보고 션별하여 묶어 둔 참이다. 등대 안은 그들의 아지트가 아니라 좁디좁은 감옥으로 변모하였다. 포승줄을 사전에 넘겨준 보람이 있게도 꼼꼼히 포박한 모양새다.

 

“뭐, 이 사람들 중 한 명은 제 동료였던 사람입죠.”

“…음?”

“배신을 해서.”

“아.”

 

살려둘 지 어떨 지 고민하던 차였노라 냉혹히 말한다. 그 찰나를 사제는 보았고, 그의 삶이 저 밤바다만큼 어둡다는 사실을 엿보았다.

 

“뭐, 그건 그거고 털 건 털어야죠. 이 사람은 등대지기.”

 

유일하게 묶이지 않고, 또한 그럼에도 구석에서 오들오들 떠는 사람을 그는 가리킨다. 등대지기, 아무래도 인질 비슷한 것으로 잡혀 있었나 보다. 사제는 등대지기에게 가까이 가 신성력으로 안정을 도모해 본다.

 

“사제, 사제님이시군요.”

“이제 괜찮습니다. 신께서 굽어 살피실 것입니다.”

“…바다께서 저희를 버리시지 않으셨군요.”

 

아, 바다에 삶을 건 사람들이었지 참. 그녀는 그들의 사고 방식을 이해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오랜 시간 살아온 사람들에게, 신전의 방식을 굳이 강요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악마숭배자가 아닌 이상 그럴 이유는 굳이 없다. 단단한 손이 메마르고 겁먹은 이를 바로잡는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아니, 그거 말고. 유령선에 대해 물어봅시다, 우리.”

“…유령선이요.”

 

혼란이 가득 담긴 혼탁한 눈은 이내 기억 속에서 어떤 단편을 찾아냈는지 맑게 빛나기 시작한다. 꿈결을 길어 온 목소리는 밤바다처럼 고요하고 차분했다. 그 내용은 필히, 이 시간의 바다 너머처럼 알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할 것이며, 음산할 것이리라.

 

-

 

그러고 보니 해적들이 나타난 건 그 때부터 였군요.

사실, 유령선 이야기는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친숙한 이야기였습니다. 그야 이백 년 전, 진주조개 절반이 폐사하는 바다의 저주가 내린 날 이후 어느 날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해지니까요. 우리 도시 사람들 사이에서는 종종 그 유령선이 바다의 전령이라고 불리기도 했습지요.

뭐, 전령이라고 해 봤자 종종 위험한 해역에 들어가지 말라고 안개 너머에서 손짓하는 정도였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그랬었죠. 바다 깊이 상어나 고래들이 배를 아무렇지도 않게 치고 갈, 그런 해역 말입니다.

아니면 암초가 좀 많은 곳. 아, 원래는 그곳이 진주조개가 참 많았었는데. 수심이 조금 깊어도 목숨 걸고 가면은 말입니다, 종종 주먹만 한 진주를 얻어 온다 말이 참 많았죠. 거기 있던 조개들이 다 폐사하고, 돌아다니던 고래들도 그 때 아마 죽었죠. 그래도 여전히 고래는 있는지 바다에서 항상 울음소리가 들리더만요.

고래 이야기를 하니, 그거 아십니까? 도시에서는 한때 고래 눈물이 진주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다른 해안가 쪽 인어 전설이 어쩌다가 그렇게 와전이 됐는지 원. 하지만 도시 사람들 중 한 명은 위장에서 그 뭐더라, 무슨 향? 을 발견해서 일확천금 했다는구만요.

어쩌다가 이야기가 이렇게 됐더라. 하여튼 그렇게 바다 생물들이 폐사하고 얼마 안 가서 유령선이 등장했더라 하더랍니다. 그런데 제가 등대지기 일을 하고 있는데 제가 봐 버린 겁니다요.

 

물안개가 짙게 낀 새벽이었죠. 그 날 따라 공기가 참 차가웠습니다.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둡듯이 공기도 가장 차게 식은 때였습니다. 바다는 빛을 받지 않아 검은 것이 꼭, 그래, 죽은 바다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까, 그걸 떠오르게 하더군요.

파도는 안개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소리로 들어 보건대 제법 거칠었을 게 분명합니다. 아, 아니. 등대가 있는 절벽까지 바닷물이 튀었던 게 기억나네요. 그로 보건대 바다님이 노하신 건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아주 거칠었어요.

그러니 등대지기인 저도 이 야밤에 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개 투성이인 수평선을 뚫어져라 보면서 혹시라도 배가 오나 살펴 보고, 한편으로는 뱃사람들 불러서 다들 배 떠내려가지 않게 닻 잘 내려 뒀느냐 이랬죠. 새벽부터 어선질 하러 나가려는 사람들에 상선 준비하는 사람들 전부 정신없어 하던 게 기억이 나는 구만요.

아직까지 진주조개 까고 다니는 사람들은 허망하게 바다 바라보고 있었죠. 저 날씨에 바다 밑으로 잠수하면 그 날 부로 육지에 다시는 못 돌아올 지도 모르니까는. 근데 그 때 한 명이, 거 뭐냐, 가려 하덥디다? 어차피 자기는 이대로 배 곪으면 내일 죽는다고?

사람들이 다 말렸죠. 그래도 오후 가면은 이제 바다님도 잠드시지 않겠느냐. 달이 같이 떠 있어 가지고 바다님이 장난을 많이 치시는 거다. 그렇다 해도 이 사람이 술을 마셨는지, 기어이 바다로 몸을 던질라 하는 겁니다. 세상에, 다들 그렇게 말렸는데도요.

등대에서 멀리 배 오는지 아닌지 보던 저도 소란 때문에 망원경으로 보고 있었는데 정말 아찔했다구요. 말소리는 멍멍히 울리는데 저는 이제 높이 있으니 뭐라 말리지도 못하고. 그냥 등대만 얌전히 지키고 있어야지.

어휴, 그래서 그 사람을 겨우 건졌다, 아니 사실 그 사람 안 빠졌습니다. 그때까지는 말입죠. 거기 있던 사람 몇이 힘이 억수로 장사라 가지고 확 반대방향으로 자빠뜨리니까는 꺼이꺼이 울면서도 그냥 바다 근처보다 육지로 도망칠라고 쫄래쫄래 가던데?

근데 이제 일이 난 겁니다. 아까 제가 말했죠? 등대 있는 절벽까지 파도가 들이쳤다고.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낮은 항만에는 당연히 물이 무지막지하게 들이차고, 나가고, 그랬다 이말이죠. 그런데 이제 다리 힘이 탁 풀린 사람이 때마침 거기 있었고, 거센 파도가 순간 덮쳐 온 겁니다. 순식간에 사람 한 명이 바다에 잡아 먹힌 거에요.

다들 할 말을 잃어버렸죠. 네.

 

그런데 그 순간에 제가 다급히 망원경을 수평선 너머로 돌렸을 때, 거대한 범선의 그림자가 안개를 거느리고 오고 있던 겁니다!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그게, 안개가 더욱 짙어져 가지고는 말입니다.

그래서 스윽 둘러봤는데 무슨 배가, 집채만해 가지고는, 성채처럼 말이죠? 그게 슈우욱 하고 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급히 사람들을 불렀죠. 안개에 가려서 그 사람들한테는 안 보였나 봅니다. 그런데 제 눈에는 똑바로 보였다구요. 그 배가 지금 이대로 오면, 멈추지 않으면 그대로 저기 남은 사람들까지 전부 바다로 보내버리고 항구를 부숴버릴 거라는 게! 그런 미래가!

제가 얼마나 전등을 열심히 깜빡깜빡 켰다 껏다 하면서 신호를 보냈겠습니까. 안개 때문에 바닷길은 비춰지지도 않지, 답답해 죽는 줄 알았는데 그 와중에 사람들은 그래도 후다닥 잘 도망가더만요. 근데 이제 배 방향을 보니까 등대인 겁니다. 이야, 나는 죽겠구나. 나는 배랑 키스해서 죽는구나! 물안개가 사아악, 마법등 있는 쪽까지 확 들어오는 거에요.

그 물안개는 파도랑 필적할 정도로 짭짤했다구요.

 

순간 공기가 밤공기보다 훨씬 더 차가워지는 거 있죠? 북방의 눈 오는 공기가 꼭 이럴 거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오들오들 떨리는 게 저 스스로도 느껴졌다니까요. 하여튼 그 때 숨이 턱 막히면서 눈은 이제 똑바로 뜨고 있었는데.

물안개가 슈아악, 지나가더니 등대 저기, 난간 보이시죠? 그 근처에 아까 빠진 사람이 뽀송하게 마른 채로 있더구만요. 저는 이제 등대 창문으로 멍하니 보다가 봤죠.

거대한 배 그림자를 봤다구요. 그 위에 유일하게 서 있는 사람 그림자도 봤습죠.

그건 유령선이였어요. 선장 하나밖에 안 남은 유령선!

 

-

 

“…해서 그, 바다에 빠졌다던 사람은?”

“흑진주 하나를 팔아가지고 도박에 꼴았다나?”

“흑진주?”

“정신을 차려 보니 품에 있더랍니다. 그거 때문에 아마 해적들이 몰렸을 거에요.”

 

해적들 사이에서 괜히 유령선 이야기가 나돈 것이 아니었다. 보물 이야기를 하기에 혹시나 했는데, 이건 예상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나. 등대지기의 이야기를 듣던 두 사람 모두 초록빛 두 눈을 크게 떠 진담이냐고 물어보고 있었다.

흑진주를 주는 유령선. 소문이 퍼지지 않기에는 너무 파격적인 내용이다. 해적들이 군침 흘리지 않기에는 이미 실제 사례가 존재했고, 증언할 인간이 두 사람의 눈 앞에 떡하니 있었다.

인퀴지터는 그러니까, 머리가 좀 아팠다. 단순히 이런 소문 때문에 일이 터지는 건 몇 번의 경험 속에서 대강 그러려니,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대상이 허구의 존재인 데다가 일의 규모도 보통이 아닌 상태다. 상식을 벗어나고 신전의 규범과 규율에서도 엇나갔다.

다른 게 아니라 단지 흑진주를 얻을 수 있다는 도박과도 같은 믿음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것이 가장 화가 났다. 인퀴지터의 머릿속, 빠르게 정리되어 가는 뜨거운 분노가 간결한 문장을 만들었다.

 

“사람이 바다에 빠지려 드니 그렇게 됐다면…”

 

데스브링거는 이윽고 잠깐의 침묵 끝에 제 추론을 꺼내 든다. 혹 사람 몇이 실종되지는 않았는지, 바다로 나갔다가 사라진 사람은 없는지, 저 해적들이 이 이야기를 구실 삼아 이곳에 터를 잡고 인간 실격 언저리의 불온한 온상과 같은 일을 해먹을 작정을 하려는 것은 아닌지. 몇 가지 가능성을 냉정히 검토하며 등대지기와 인퀴지터에게 그리 설명을 한다.

하면 할수록 치미는 것은, 분노다. 저 짐승 뼈다귀만도 못한 작자들이. 사제의 어금니에서 끝내 까드득, 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무언가를 고이 참다가, 그럴 필요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일종의 효시이자 경종이다.

데스브링거도 동의하는 바이나, 일단 등대를 탈환한 만큼 당장 해적들은 조용할 것이라 덧붙인다.

 

그러나.

그녀는 사제다. 악인을 보고, 악행을 보고, 불의를 보고 참기에는, 제법 올곧게 큰 사람이었다. 하물며 저와 동행하고 있는 도적 마저도 저를 불러내기 위해 극을 꾸렸다 하니 죄는 없다며 끝내 무르는 사람이고, 동시에 사람을 속였으니 임시로 만든 작은 기도실로 끌고 가려 하지 않았나.

그녀는 그러니까 이 상황이 소강 상태로 접어든 것 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이 도시의 그림자 밑으로 간신히 피신한 자들은 시민들이 아니라 해적들이어야 했고, 아니 그 이전에 그 그림자를 전부 뜯어내 태양 아래 태워버리고 싶었다.

이런 현상유지로는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결국 도시 어딘가에서는 누군가가 고통받고 있을 테니까.

 

“꼼꼼히 검문해야 겠군.”

“아니, 더 머물 겁니까?”

“네 녀석도 할 일은 남았겠지. 여기서 해산인가.”

“…아니, 뭘 하시려고.”

 

그러니 도적은 열의를 불태우는 사제의 태도에 당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더 쥐 잡듯 하면 해적들이 더 잡히기야 하겠다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텐데. 눈짓으로 그렇게 물어보고 싶어도.

똑바른 눈이다. 올곧은 사람의 눈이라 함부로 마주 보기 참 쉽지 않다. 그러나 먼저 마주해 오는 사람은 사제다. 그 질문에 대해 본인도 마침 생각한 바 있다는 듯이.

이곳에 오래 체류할 수는 없었다. 귀중한 증표를 가진 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시간이 오래 끌리는 동안 도시는 어떻게든 곪아 버릴 것이다. 그녀는 적어도, 이곳에 살던 선량한 시민들의 삶에 안녕을 빌고 싶었다. 그것이 신의 가르침이고 그 이전에 그녀 자신의 바람이다.

 

“유령선 때문에 몰렸다면, 유령선의 소문을 없애면 되는 게 아닌가?”

“예?”

“그게 거짓이면 해적들은 자연히 돌아갈 것이고, 진실이거든 사제의 이름으로 그 유령을 신의 이름 아래 안식으로 이끌면 되는 것 아닌가.”

 

하니 목적을 명확히 정한다. 그 유령선에 대해 조사하기로.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등대의 안팎에 울린다.

 

-

 

등대의 해방 소식에 도시는 승전보 하나 울린 전장처럼 들뜨기 시작했다. 살금거리는 입꼬리는 아직까지 숨기는 기색이었지만, 곧 한 명 한 명 다시금 웃음을 되찾을 것이다.

저 사실 하나로, 이곳에 들를 배들은 모두 올 수 있을 것이다. 선착장에 불법 정박한 배들을 모두 물려야 그렇게 되겠지만, 지금 당장 주민들의 활기가 돈 것으로 데스브링거는 만족하기로 하였다.

후. 가볍게 숨을 내쉰 그의 손에는 아까 죽인 배신자의 식은 몸뚱이가 들려 있었다.

 

유령선과 그 위에 유일한, 선장인지도 승객인지도 모를 인영. 그걸 당장 여기서 어떻게 찾는담. 첨벙, 바다의 얕은 물살에 식은 고기가 떨어진다. 유감은 많고 이 행위가 썩 유쾌하진 않았으나 그게 제 할 일이었으니, 그는 이내 눈을 감는다. 이 유해의 눈 대신에 저가 눈을 감는다. 유일한 도망이다.

적어도 너가 바다로 간다면 정보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겠지, 배신할 일도 없겠네. 살아남은 대가로 손을 씻지도 못하는 이의 희게 질린 낯짝이 안개 속에 도드라진다. 바다에 낀 물안개는 등대지기의 말마따나 파도 만큼이나, 땅에 선 사람을 적시기 충분했다.

물보라가 공중에 멈춘 채 헤엄치는 것 같다. 데스브링거는 물로 가득한 공기에 숨이 뻑뻑해져 옴을 느끼며 눈을 떴다.

 

눈을 뜨면 안개 사이로, 거대한 그림자가 보인다.

고래를 닮은 범선의 그림자다. 거대한 범선이, 그 그림자가, 형체가, 안개를 부수면서 절벽 위의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방향을 잃은 배가, 안개와 함께 덮쳐 온다.

암녹색 두 눈에 새카만 그림자가 진다. 그건 음울로 인한 것도 공포로 인한 것도 아니다. 그저 자연을 연상시키는, 광막한 존재의 그림자가 드리웠을 뿐이다.

순전히 배의 그림자임에도 태고의 자연과 맞먹는 듯한 아득한 경외를 느끼게 하는, 파도 소리 하나 없이 물안개만이 그의 두 눈을 맑게 하고 두 귀를 덮어, 검은 형체만이 쇄도해 옴에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압도감.

두려움 마저 잊어버리게 만드는, 숨이 멎을 것 같은 그 순간.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잊을 정도의 텅 빈 찰나 속 온 몸을 비틀어 짜내는 듯한 무구한 공포.

죽음을 예감하는 눈은 다시 곱게 감긴다.

 

다음 순간, 그는 거센 풍랑 혹은 뼈와 살이 모두 범선에 부딪혀 우그러지는 고통을 예비하였으나, 그 대신 그에게 주어진 것은 미지근하고 조심스러운 어떤 손길이다.

의구심에 눈을 슬며시 뜨면 그곳에는, 저가 떨어뜨린 시체를 도로 그의 발치에 내려 놓으며 동시에 그의 갈 곳 잃은 손에 무언가를 쥐여 주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그러니까.

 

어떤 이인지 기억하기도 전에, 광폭한 충격의 영향으로 그는 까무룩 기절하고 만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면 그곳에는, 시신도 없고 유령선도 없으며 안개도 없는 평온한 해안의 어느 절벽일 뿐이다.

 

그렇구나. 이 사람은 해적에게 붙은 자였구나.

꿈 속에서 파도만큼 거칠고 모래만큼 메말랐으며 바닷속만큼 한없이 일렁이는 목소리를 언뜻 들은 것 같았다.

데스브링거는 손 안에 들린 천조각을 보았다. 천조각 안에는 밤바다 한 조각과 심해 한 조각을 담아 빛을 잡아먹으며 빛나는, 둥근 보석 하나가 있다.

흑진주. 조용히 침 삼키는 소리가 났다. 그 자신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등대지기에게 들은 말을 이런 식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진 않았던 데다가,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조차 못 했는데. 보석과 눈이 마주치면 마치 심연을 들여다 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 그는 얼른 천으로 진주를 감싼다.

빨려 들어가는 기분에 숨이 막힌다. 후우, 불안정한 숨은 암살자의 미덕이 아니기 때문에, 그는 다시금 호흡을 정돈하고 걸음을 정돈한다.

 

절벽에 난 흔적은 분명히 시신이 그 옆에 존재했었다 이르고 있건만. 그는 그 시신을 던졌고, 누군가는 도로 돌려주었으며, 눈을 뜨면 그 홀로 거기에 존재한 채였다. 연약한 풀들이 누운 자국은 거기에 두 명이 누워 있었다고 일러주고 있었음에도, 결국 최후에 선 것은 그 혼자다.

아니 애초에 그 시신이 다시 설 일은 없지만. 데스브링거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진심으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 머리가 아팠다. 귀신에 홀렸나. 죄를 지어서 작정하고 홀려 버리고 말았나? 아, 이렇게 고민할 바에는 차라리 사제에게 축성을 받는 것이 나을 터다. 만났다고 한다면 그 사제도 활로가 트였다고 기뻐하겠지. 소리 없는 발이 움직인다.

이 일을 어떻게 풀어 설명해야 할까. 누군가의 죽음이 필연으로 보였던 바로 그 광경을, 어떻게 일러야 할까.

 

-

 

해서 그는 그저 간단히 요약했다. 유령선이 나타났다. 나에게 흑진주를 주더라. 두 문장으로 간결히 상황 설명을 마친 그는, 짐짓 못 볼 걸 본 사람의 표정을 연기하며 모든 질문을 종식시켰다. 그가 평범한 사람이었어도 다른 이들은 복잡한 사연이 새로 생겨 버린 걸 알고 입을 다물었을 만큼, 제법 처량한 얼굴이었다.

인퀴지터는 이 사람이 칼과 손에 직접 피를 묻히고 다니는 인간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쉽사리, 말을 꺼낼 수도 붙일 수도 없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데스브링거는 상상 이상의 진창을 눈 앞에서 여럿 들여다본 바 있을 사람인데도 저렇게 나온다면, 이 이상 끄집어 내는 건 아마 상처일 지도 모르겠다.

그리 속으로 결론을 내면 사제는 이제, 앞길과 계획을 재정비할 때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갑옷을 벗은, 바닷가의 태양에 슬슬 익어가던 손이 도로록, 책상을 두드린다. 메이스를 잡느라 굳은살 가득 박힌 손이 조금의 초조함을 나타낸다.

 

“본 장소에 다시 가 봐야 하나?”

 

그럼 그곳에는 아직 누워 있는 시체 자국이 있을 텐데. 고깃덩이에 눌린 풀이 고개를 아직 들지 못한 채일 텐데. 암녹색 눈이 데구륵 굴러 간다. 솔직히 보이고 싶은 광경은 아니다. 의심받고 싶지도 않았다.

사제는 저만치 상상의 나래 언저리로 굴러간 도적의 시선을 본다. 의심이 문득 고개를 드나, 이내 머릿속에서 그 자가 단지 도적이라 그러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라 한다. 그녀는 조용히 보류를 내정한다. 그럼 다른 것은 없는가?

해적을 소탕하기 위해 찾아온 이단심문관의 관심은 어느새 목적이 유령선으로 쏠려 있었다.

 

“…유령선이 나타나기 시작한 게 이백 년 전 부터라면, 뭔가 더 없나.”

“으음,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단순히 바다 생물들의 폐사 이후 갑자기 나타나는 건 이상하지 않나.”

 

둘 모두 각자의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가며 생각을 쥐어 짜낸다. 확실히, 등장 시기가 갑작스러웠고 둘 사이에 인과 관계가 있을 법도 하다는 예감이 든다. 비교적 옛적에 일어난 현상과 그 사이에서 탄생한 기이한 존재. 시기가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맞물리기도 힘들다.

 

정보가 조금 더 필요하다. 태양을 닮은 사제는 이번에는, 달의 그림자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본다. 이번에는 너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같은 결론을 낸 도적은 이번에야말로 사제의 눈을 명확히 직시한다. 역할 맡은 바를 충실히 이행할 시간이고, 여기 온 목적을 본격화할 때가 왔다.

 

-

 

배신한 사람은 그 날 이후로는 없었다. 그들에게는 참 다행인 소식이었다.

숨어든 해적 사이로, 마찬가지로 숨어들어 정보를 캐내거나 혹은 붙잡혀도 입을 아예 다물고 있던 자들을 속속이 찾아 내었다. 이 항구도시의 정보 길드에 소속되어 있던 사람들이다. 바다 냄새가 유난히 옅고, 갈매기 깃털보다 육지 새의 깃을 조금 더 선호하는 자들.

끝이 회색인 깃보다는 신전 타종에 흩어질 흰 비둘기의 깃이 더 익숙한 사람들이 데스브링거의 손에 잡아 채이고 인퀴지터의 앞에 끌려왔다. 인퀴지터는 당연하게도 그들을 얄짤없이 포승줄로 묶었다. 이건 데스브링거도 동의한 바였다. 험하게 다루는 것이라 인퀴지터 입장에서도 조금 놀랐지만, 정보꾼들 사이에서는 일상적인 일인지 다들 눈 하나 깜짝 하지도 않았다.

포승줄에 묶인 사람들을 사제가 머뭇거리며 바라보자, 됐다 하는 사람들이란.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묶어 두질 않으면 어디론가 튀기 마련이라고 데스브링거는 덧붙였다. 조금 쌓인 죄책감이 말 한마디에 약간은 덜어진다.

 

“정보 길드 위치는 그래서, 이 도시의 어딥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그곳을 확보해야만 수월하게 돌아가던, 발길질의 파도에 짓이겨진 정보의 산호가 산호초로 전락하기 전에 구조하던 할 것이다.

 

“얻으려는 정보가 무엇이죠?”

 

이곳에서 지내던 정보원이 무거운 입을 드디어 연다. 하나같이 조개처럼 앙 다물린 입들이라, 저 안에서 나올 진주와도 같은 정보를 둘은 기다린다. 정확히는 골라내는 게 맞겠지만.

 

“이백 년 전, 이 지역에서 있던 일.”

“그게 문헌으로 남아 있을지 모르겠네요.”

“문헌이라도 남아 있어야지.”

 

죽음을 손수 대령하는 자의 눈빛이 대번 서늘해진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이 바닥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의 말을 수집해서라도 찜 쪄 와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낯이다. 이곳에 터를 내린 정보 길드 소속원들은 그를 잠깐 아니꼽게 보았으나, 이내 정보를 모으려면 필요한 과정임을 납득은 해버린다. 사라진 정보는 복구해야지.

 

“내가 할 일은 또 있나?”

“댁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제니까, 말 좀 여쭤 보십쇼. 이런 옛 이야기는 문헌으로 없으면 구전으로 나오거든.”

 

알았다. 즉답이 떨어지고 동시에 기척 몇이 사라진다. 며칠 봤다고 익숙해진 건지, 이제는 약속 장소도 말 하지 않고 자연스레 손을 흔들며 마지막으로 이탈한다.

바다를 닮은 새파란 하늘에 양떼를 닮은 구름이 깔린다. 길 잃은 도시의 어린 양들이 태양을 찾아 드디어 이 도시 하늘에 바로 선 듯 했다.

 

-

 

바다의 사람들은 어떻게 사람을 보내는가.

건너 들은 이야기로는, 조각배에 사람을 싣고 그 위로 불화살을 쏜다 하더라. 그렇게 사람의 영혼이 바다로 흐르게, 바다에서 다시 보자 하는 것일까. 사제는 유령에 대해 생각하다 생각이 튀었음을 깨닫는다.

사제들은 신전 안에서 많은 일을 하곤 한다. 미사의 집전부터, 사람들에게 축복과 축성을 하고, 축일이면 기념 행사를 준비하며, 세례를 받을 아이에게 진심을 보낸다. 그 진심은 장례를 할 때에도 매한가지이다. 첫 세례와 장례 미사는 삶의 시작과 끝이다. 신께서 보낸 이가 다시 신의 곁으로 돌아가는 의식을 치르는 것이니 말이다.

팔랑, 홀로 돌아다니는 그녀의 곁을 날개 달린 짐승들이 함께 한다. 제법 활기 가득해 진 도시에는 바다새들이 하나 둘 다시금 자리하기 시작한다. 저 갈매기들도 아마 바다의 장례에 참여했겠지. 불타는 조각배가 관이었고 바다는 곧 육 피트 밑의 영원한 대지와 같이 사람을 마음 속에 묻을 것이다.

그렇게 흐르고 흘러, 땅에서는 나무가 자라고 바다는 파도를 사람들에게 전한다. 그러는 동안 남은 사람들은 또다시 자신들의 영역에서 삶을 새로 가꾸고 상처를 서로 보듬으려 노력한다.

그렇다면 유령선과 그 유일한 승객은 어찌 흐름을 거슬러 가는가. 불타는 걸 거부한 채, 부딪히는 것도 거부한 채 바다에 영혼이 표류하고 있지 않나.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사제인 그녀로서는 제법, 가엾게 느낄 일이었다.

망망대해에 홀로 있을 그 영혼은 아마 많이 외로울 텐데. 아, 갈매기와 라도 친교를 다지는 걸까. 어쩌면 저 바닷새들은 무언가 알 지도 모르겠다. 실없는 생각이다.

 

항구도시를 돌아다닌 지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을 그녀는 봐 왔고, 많은 공간을 스쳐 지나갔다. 유령이 나온다는 공간은 육지에서 생각해 보자면 묘지였으나 바다에선 말 그대로, 또한 바다였다.

그래, 그들의 영토는 바다였다. 유령선의 해역 또한 바다이며, 이는 그녀가 직접 찾아갈 수 없음을 의미했다. 지금껏 구구절절 해안가 사람들의 장례 의례를 생각해 본 이유는 실상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유령을 본다면 어떻게 보내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접근일 뿐이다.

제법 얼굴이 익은 사람들에게 이백 년 전 이야기를 물어도 언뜻 언뜻 이야기가 나올 뿐 거의 모든 것이, 등대지기가 한 말과 겹쳤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때 고래 때가 있었네 없었네, 조개들이 사실 발이 달려서 도망을 갔네 정도의 사소한 차이였다. 말인 즉, 그녀는 계속 허탕을 치고 있었다는 뜻이다.

무력감을 느끼고 싶지는 않아도 지치는 것은 사실이다. 어떤 힌트 하나라도 얻는다면 좋으련만.

 

그 때, 도적을 처음 만났을 당시의 사람-자작극에 동참한 바로 그 사람-이 눈에 띈다. 등이 조금 곱은 노파다.

 

“어르신, 혹시 절 기억하십니까?”

“에그머니나! 아이고.”

 

예상대로 놀란다. 사람은 나쁜 짓을 하면 이리 놀라고, 달갑지 않아 한다. 도처에 깔린 악인들은 하여튼 이러지를 않고. 도적이란 녀석도 서슴없고 뻔뻔하기로는 그녀가 교우를 다진 인간 중에선 최고일 것이다. 거스러미 삼키는 기분을 뒤로 한 채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 말씀을 여쭙고자 합니다만.”

“무, 슨 일이십니까. 사제 분이.”

“이 도시가 진주의 절반을 잃었을 때의 일을 아십니까?”

 

이백 년 전 말입니다. 연로하신 분이니 어쩌면 귓동냥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이야기라도 들을 수 있을 성 싶었다. 이런 이야기는 도적의 말 대로 기록보다는 설화로 내려올 때가 훨씬 많았다.

 

“…그 일을 말하는 거요?”

“아십니까? 고래나 조개에 대해서…”

“아니, 그 이후에 나타난 이상한 사람을 말하는 겝니다.”

 

예? 사제는 갑자기 등장한 인물에 당황하여 반문한다.

사제가 예상 범위 안에 넣었던 건 진주조개가 절반이 사라져 상선들이 이탈하다가 사고가 났거나, 고래들을 사냥이라도 하던 작자들이 별안간 바다의 저주를 받았거나 하는 종류였다. 실제로도 그런 소문은 이 도시에 흘러 넘쳤으니까. 그래서 그쪽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었는데.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나요?”

“서서… 말을 오래 할 수는 없겠습니다.”

 

곱은 등이 시큰거리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사제는 노파의 집이 어디인지 물어보았고, 늙은 지혜를 들여다보기 위해 기꺼이 그 사람의 다리가 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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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quaRyuichi Sakam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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