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보다 인간이 두려워진 지 수 세기가 넘은 지금도, 바다 연안은 여전히 자연을 숭상한다.
건조한 기운 하나 없는 습한 바닷바람이 짜고 거친 소금 가루를 사제의 뺨에 붙이며 불어왔다. 사제는 이제 막 바닷가에 도착한 채다. 그녀의 눈에 비치는 풍경은 갈매기 떼의 습격이다. 갈매기가 생선 비린내와 육지 흙먼지 냄새를 맡고 배의 돛이며 갑판 위며, 심지어는 조타 위에도 당당히 자리한 채 가장 먼저 신경질을 부리고 있었다.
바닷새가 사람보다 먼저 텃세를 부린다. 낭만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풍경을 사제는 지켜본다. 짧게 자른 붉은 머리카락에 알알이 소금 알갱이가 붙기 시작한다. 바다의 흔적이 뭍에서 온 사람에게 손길을 뻗기 시작한다. 이곳은 바다의 영역이니, 어서 오거라. 그리고 버텨 보거라, 육지의 단단한 땅에 뿌리내린 채 살던 것들아. 사람보다 먼저 자연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신전이 융성하여 종교인들이 돌아다녀도, 학자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녀도, 바다에 인접한 도시란 늘 그랬다. 바다라는 자연이 먼저 사람들을 반겨 오고, 시험하고, 삶의 터전을 구경 시켜주는, 그런 곳이었다.
터벅, 선착장의 나무 바닥에 무사히 발을 디딘 사제는 이곳에 온 목적을 상기한다. 삐걱삐걱 소리를 내는 걸음은 그녀가 아직 이 땅 위에 어색한 존재임을 증명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여기에서 할 일이 있었다.
이단심문관, 인퀴지터로서.
그녀의 앞길이 바다는 퍽 궁금했는지, 옹기종기 모인 바닷새들이 제 하얀 날개를 일제히 펼치고 하늘을 어지럽힌다. 인퀴지터는 그 모습이 꼭 흰 비둘기가 성당의 타종 소리에 맞춰 날아오르는 것과 같이 느껴졌다.
뱃고둥 소리 울리지 않은 항만에서, 매끄러운 깃털의 비가 내렸다. 끝이 잿빛인 깃털이다. 하늘은 눈이 아플 정도로 새파랬다.
그녀는 바다 사람들을 잘 마주한 적도 없었고, 이런 마을에 제대로 도달한 적도 없었다. 기껏 해봐야 선교 일을 하겠다고 작은 거주지에 문을 두드렸던 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충분히 저가 서 있는 항구도시의 불온함을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바닷바람은 거셌으나 태양에 익어 때로는 따뜻하고 어떨 때는 뜨겁기까지 했다. 그러나 지금 이 항구에서 사람들이 내쉬는 모든 숨결은, 체온이 섞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심에 식어 싸늘했다.
처음 보는 사람은 곧 경계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그녀는 그걸 모르지 않았다. 박대하는 이들도 얼마든지 봐 왔고, 악마 숭배자들의 노골적인 적대도 견뎌온 바 있으니까. 일단 악마와 연관된 자들에게 그녀는 박빙의 냉엄함을 내비쳐 주긴 했으나, 하여튼 이곳에서 느껴지는 기류는 그 때와는 또 다르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인간이 범죄자, 그것도 당당한 듯 찔리는 것 투성이인지 애매하게 불쾌한 태도를 하고 있지 않나. 아무래도 낮이다 보니 무슨 짓을 벌이기 싫은 이들의 가련함이리라, 그녀는 짐작한다.
그녀 또한 같은 공기를 점유하고 싶지는 않았다. 후우, 그녀는 깊게 숨을 내쉰 뒤 잰걸음으로 무리를 헤쳐 간다. 저 자연을 그래도 닮았답시고, 사람들은 출렁이는 파도를 닮아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비록 그녀의 등장에 빙해로 전락했지만 말이다. 고요로 얼어붙은 인간의 바다를 사제는 쇄빙하며 나아갔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갈 곳은 마땅하지 않았다. 그녀의 임무는 단 하나.
이 일대의 해적을 모조리 뿌리 뽑는 것.
하선할 적부터 착실히 쥐고 있던 메이스가 길을 열고 있었다. 여차 하면 도착하자마자 해적들과 열 두시간은 족히 넘는 전투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저쪽이 덤벼들지 않으니 인퀴지터에게도 심판을 준비할 시간이 생긴 셈이다.
동시에 이 사태와 연관 없거나, 오히려 피해를 보고 있는 이들을 찾아내어 보호할 수 있게 된 셈이기도 할 테다. 방향을 고민하던 그녀는 성주에게 머리를 들이밀기로 작정하였다. 결국 해적을 감옥에 쳐넣고 사람들을 보호하려면 성주의 도움은 필수적이니까.
뚜벅뚜벅, 젊은 청년의 걸음걸이는 당차다기 보단 비장했다. 지고 있는 짐이 많은 사람의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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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에게 대략적인 상황과 잠자리를 얻고 난 뒤 창 밖을 바라보면 노을이 지고 있다.
성주도 이런 상황을 손쓰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항구 도시의 숙명은 저런 해적들과 맞서 싸우는 것이고 물길을 쟁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평선 위에 존재하는 모든 해적들이 저들끼리 앞바다에서 패싸움을 하며 교역로 자체가 막혀 버렸을 때, 도시의 존폐는 그 순간 해적들의 손으로 넘어가 버렸다고 말했다.
그 부분이 이상하다고 인퀴지터는 말했으나 성주는 이 도시의 명물인 진주를 이유로 삼았다. 진주조개의 산지로 유명한 곳이니 몇 십 년에 한 번은 이런 일이 일어났었다는 기록이 존재했다. 사제는 그렇다면 대체 왜 경비 육성을 게을리 했는지 묻고 싶었다. 지키기 위해 태어나고 심판하기 위해 자란 자는 성주의 나태를 보아 넘기기에 어려웠다.
그러나 성주는 그 몇 십 년의 주기가 끊긴 지도 근 이백 년에 달한다 증언하였다. 기록할 필요성이 옅어진 지도, 경비를 다른 도시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맞춘 지도 백 년은 족히 지난 상황이었다. 진주조개의 산지는 이백 년 전에 그 절반 이상을 잃어버리고 퇴색된 도시였으니.
그러므로 지금 대의 성주가 이때껏 보아 온 해적들은 고작 해봐야 상선이나 어선을 제대로 납치도 못 하는 쥐새끼 나부랭이들 뿐이었던 거다. 인퀴지터는 격변한 역사 속에 태어난 성주를 나무라기 보다는 제 할 일을 찾아 나서기로 하였다. 안타까워 하지 않았으나, 성주는 그녀의 표정에 어느새 뜬 자그마한 동정을 봤는지 그저 그녀의 손등을 꾹 잡아 미안하다 할 뿐이었다.
허면 할 일이란 무엇인가. 바다에 빠져 영원히 가라앉을 지 몰라, 그녀가 자랑하던 중무장은 얌전히 마법 인벤토리에 잠들어 있었다. 갑옷이라 하기에도 가벼운 사제복을 걸친 채 그녀는 배정받은 방 안에 섰다. 바깥은 노을이 마저, 눈 뜬 사람들에게 안녕을 고하고 있었다.
곧 도래할 어둠은 이 도시에 도사린 악인들의 본모습을 들춰낼 것이다. 밤의 장막 아래에서 마음껏 춤추고 노는 자들을.
그렇다면 그 장막을 열어 젖히고 스스로 태양 될 이 존재 해야지. 메이스를 비껴 든 그녀의 눈은 심판자로 벼려진 이라 하기에 충분하였다.
단죄자가 당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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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퀴지터는 본래 악마를 퇴치하는 일이 주 업무였으나, 이번 사안의 규모를 듣고 스스로 승선하였다. 제가 탄 이 배가 부디 이 지역 사람들의 구명줄이 되기를. 그렇게 하루 열 두번을 성호경을 그어 가며 기도했다. 그리하여 도달한 이곳의 밤을, 몇 날 며칠 간의 경험으로 짧게 요약하자면, 그녀는 문장을 가볍게 작성한다. 보고용 종이이다.
추악하고 징그러운 인간들이 구더기처럼 득시글거렸습니다. 악마숭배자도 아닌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도시를 장악해, 독과 술을 흐르게 하는 행태가 가히 악마와 필적합니다.
깃펜이 사각거리다가 이내 뚝, 부러진다. 분노에 치민 어린 사제의 힘에 연약한 깃이 끊어진 것이다.
잉크로 검게 젖은 손이 그 더러움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한 방울이 보고서에 채 떨어지기 전에 그녀는 주먹을 쥐고 손을 뒤로 하여 번짐을 막았다. 검게 물든 도시, 바다의 무법자들에게 침잠해가는 삶. 심판과 단죄가 이렇게 많이 일어날 일이던가. 끝이 짐작이 가지를 않았다.
뚝, 뚝. 아, 꺾인 깃펜에서 끝내 잉크가 흘러나와 종이를 적신다. 이러면 재빨리 손을 치운 보람이 없지 않나? 아니, 새 깃펜을 마련할 수 있어 좋은 셈 쳐야겠다.
똑. 책상에서 마지막으로 굴러 떨어진 잉크 방울 소리는 도시의 눈물이다. 고이지 못한 웅덩이는 바닥에 스며들어 오늘도 각자의 슬픔을 노래한다. 그러나 사제가 도래한 이래, 슬픔의 비명보다는 단죄한 자들의 비겁한 구걸이 감옥에서 흘러 나오니.
새 깃펜은 바다새의 것이다. 가볍고, 짠 내가 났으며, 끝은 회색이었다. 이 도시를 닮았다고 인퀴지터는 생각했다. 아직 바다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의 생각이다.
육지에서부터 인간의 인두겁을 쓴 악마들을 심판할 자가 왔다.
도시 전역에 소식이 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아무렴 바다를 숭상하는 곳에서 신전의 인사는 낯선 존재였고, 동시에 경계의 대상이었으며 눈에 띄는 사람일 테니까. 신전의 손길이 이리도 약하며 신의 눈길이 이다지도 흐리게 비치는 곳은 그녀도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지치거나, 혹은 저 혼자 선 이 땅이 서럽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인퀴지터는 사제였고, 그 본분은 약한 이들을 지키는 것이다. 하므로 이곳에 핍박받는 이들이 있는 이상 그녀는 지치는 일 자체가 용납되지 않았으며 자신도 그럴래야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신과 육체가 내몰린 상태는 더욱 아니었다. 일단 보호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녀는 살펴야 했고 그건 순수한 영혼의 선의였다. 단지 그런 이유 하나 만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그녀였기에, 사제는 오늘도 소탕을 나섰다.
사제가 도착한 지 시일이 제법 지난 만큼 전보다 거리는 더욱 조용했다.
몸을 사리고 있는 게 어린 사제의 감으로도 느껴졌다. 사제는 고민한다, 이리 될 줄 알았다면 은밀히 그리고 더욱 확실히 잡아넣을 것을 그랬나. 눈 앞에 있는 자들부터 닥치는 대로 철창 안에 집어 던졌더니, 물이 땅에 스며들듯 해적들은 숨어 버리지 않았나.
그러나 밤에도 날뛰는 자들이 확 줄어든 것을 생각하자면, 그녀는 자신의 선택을 아주 후회하지는 않았다. 사제의 궁극적인 목표는 저들을 모두 소탕하는 것보다는 이곳의 주민들이 평화롭게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물론 소탕이 선행되어야 한다면 지독해질 각오를 하겠다만.
바닷바람이 그녀를 스치운다. 오로지 바람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도시는 며칠 새에 완전히 죽은 듯도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안다, 저 바다새들의 날개소리가 떠나지 않는 한, 저 배들의 고동 소리가 떠나지 않는 한 이 도시는 살아 있을 거라고.
애초에 해적이 늘러 붙어 있었기에 죽은 듯이 잠들어 있던 도시의 민낯이 이제사 드러난 것이라고. 갓 도착했을 때는 만조를 닮았던 도시는, 완연히 간조를 닮아 있었다. 바다 밑 땅과 숨구멍이 서서히 트이기 시작할 것이다.
물론 저 길거리 잡놈 한 명 더 쳐넣으면 그만큼 더욱더 숨통 빨리 트이겠지! 인퀴지터는 거리에서 낡은 옷을 입은 사람과 쌩판 드잡이질을 하는 청년을 홱 잡아챘다.
“넌 뭐지?”
“허? 뭡니까요. 아, 육지에서 온 사제 분이시구만?”
“일이 생겼다면 중재를 돕겠다. 무슨 일인지 말해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툼을 조율하고자 입을 열었으나, 한 쪽은 껄끄러워 하고 다른 한 쪽은 적극적으로 저를 보고 있었다.
“저 사람이 저에게 협박을…!”
“무슨!”
“에헤이, 협박이 아니라.”
“너!”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길 바래도, 바다 무법자에 풍화된 도시에서 열이면 열 빗나갔다는 걸 그녀는 모르지 않았다. 이번이 몇 번째인지 더는 세지 않기로 하였다. 대신에 그녀는 이 수상하기 짝이 없는 협박범의 손목을 우악스럽게 잡아채 제압했다.
며칠 새 조용해진 도시 속의 한바탕 소란이라 유난히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누군가가 도망치는 소리 가볍고 통통 튀며, 그녀의 밑에 요란히 깔린 작자의 앓는 소리에는 미세한 웃음소리가 끼어 있었다.
“진짜 힘 세구만요.”
“아니, 무슨 짓을 했길래 네놈에게 당한 분이 저리 급하게 도망치시는가!”
“글쎄요? 전 이제 성으로 갑니까?”
사제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협박범의 손목과 팔뚝을 마저 꾹 눌러 잡는다. 아이고, 아픕니다! 엄살 부린다고 이리저리 파닥거려도 그녀는 별 신경 안 쓰기로 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너희보다 더 아플 텐데 너희의 고달픔을 마저 헤아릴쏘냐.
오늘 치로 준비한 호송용 밧줄의 첫 손님이 된 자는 아직 얼굴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남루한 인상착의에 후드로 가린 얼굴, 식별 따위 개나 주겠다는 의지가 충만해 보였다. 그러나 그녀에게 잡힌 만큼 할 수 없이 성으로 호송될 것이며, 여기서 도망친다 하더라도 쫓으면 그만이었다.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도망치려 발악하는 인간들은 제법 되었고 그 자들은 전부 끝내, 신성한 빛의 기둥에 머리를 얻어맞았다.
그러니 도망칠 생각 말라는 듯, 경고의 의미로 그녀는 성호경을 긋는다. 여차 하면 신성한 장벽을 두껍게 세워 버릴 것이고 그 위로 메이스를 냅다 던져버릴 것이라고. 그러나 상대는 사제의 얼굴을 보더니 또 작은 웃음만을 흘린다.
대체 뭐야? 뒤늦게 사제는, 몸 안에 위험한 물건들을 숨긴 채 일부러 체포당한 뒤 광기에 휩싸인 채로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적 진영을 붕괴시키는 자들을 떠올렸다. 설마. 포승줄을 확 잡아당긴 그녀는 황급히 잡힌 인간의 케이프를 들추고 등짝과 명치께를 퍽퍽, 가볍게-상대는 아닌 것 같다만- 두드려 보았다.
“아악, 아픕니다요!”
그러는 동안 켁켁 소리가 들렸지만 그녀 입장에서는 위험을 줄이는 게 급선무다. 콜록, 명치를 단단한 손으로 두드림 당한 상대가 밭은기침을 한다.
“너무 하시네, 켁, 흐윽. 사제 나리.”
아무 이상이 없는 것에 그녀는 기침 소리를 무시했지만,
“제안을 하러 왔는데 이럴 줄이야… 여기 해적들 본거지 위치를 아는데도, 제가?”
같이 뱉어낸 날티 나는 목소리를 무시하기에는 그 내용이 퍽 달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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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협박범,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녀의 입에서는 도적이라 불리는 이 자의 말은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저는 데스브링거이며, 정보원들 중 일부가 이 도시에 묶인 채라 건져 올 겸 동향을 살피러 왔다고.
아무래도 항구 도시인 만큼 정보가 잘 모이는 곳이라 뒷골목에서도 이번 사안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그는 덧붙여 말했다. 그녀는 어떻게 직책 명이 죽음을 가져오는 자냐며 신경질을 부렸고, 데스브링거는 알 바 아니라고 쏘아붙였다.
이어 데스브링거 왈, 그러는 댁은 한 명 한 명 꼼꼼히 잡아 채지도 못하게 시끄럽게 난리를 피우지 않았냐며 성을 내었다.
“내가 하는 일이 네 녀석에게 방해가 되었다면 미안하다. 하지만 몰랐지 않나!”
“…뭐 그건 맞기는 하지만요. 게다가 그렇게 살금살금 다니게 만들어 준 덕분에 조용히 아지트까지 가는 모든 루트를 알아 낸 거기도 하고.”
“그럼 결국 도움이지 않나!”
“아니, 그건 그거고. 저도 정보 뜯을 사람 필요하거든요?”
시끌벅적하게 복작거리던 인퀴지터는, 그제야 방금 전의 일을 깨닫는다.
“너 설마…”
“뭐가요.”
“아까의 일도 일부러 날 낚으려고.”
“정답이죠. 아니면 왜 협박 내용도 상세히 안 알려줬겠어?”
킬킬대며 웃는 게 여간 얄미운 게 아니다. 데스브링거의 행동거지와 현재까지의 태도로 보아 결론적으로 방금 전의 일은 순전히, 사제를 꼬여 내 어떻게든 접촉하기 위한 일종의 케이크였던 것이다. 인퀴지터는 끝내 자기 이마를 찰싹, 가볍게 치는 수밖에 없었다.
안 아파요? 대뜸 묻는 질문에 딱히 답해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해적들의 본거지라는 정보도 과연 믿을 만 한지부터 검토해야 했으니. 그리고 데스브링거는 그녀의 얼굴을 읽었는지 걸음을 여전히 경쾌하게 유지한 채로,
“그건 거짓말 아니라니까.”
걸음소리 속에 속삭임을 섞어 그렇게 말한다. 어둠에 섞여 사는 이 답게 말 전하는 데에 서투름 하나 없다. 인퀴지터는 알겠다고,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마냥 기껍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 자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건 간에 당장은, 혼자 해적들과 정면 충돌하던 그녀에게 있어 나쁘지 않은 아군일 테니까.
이렇게 융통성 있게 구는 데에는 단 하나, 그 놈의 해적 본거지라는 키워드가 컸다. 아마 평소였다면 성 안 감옥이나 신전에 끌고 가서 입을 열게 할 것이라 못 박았을 테지만 지금 상황은 너무나도 열악했다. 선택과 집중, 두 단어가 슬슬 혀에서 단내와 함께 굴러다니기 시작할 무렵이란 말이다.
지금 당장 감옥 안에서 일어나는 소란 만으로도 성주와 경비병들은 급했다. 덜 잡아오면 안 되냐는 곡소리를 얼핏 들은 적도 있는 그녀로서는, 차라리 심부에 있는 작자를 한시라도 빨리 쳐서 이곳의 해적들을 와해시키고 싶었다. 그러니 싫어도 받아들이는 수밖에.
표정이 면면히 바뀌는 것을 본 데스브링거는 저를 잡은 사제가 정말 직관적이고 직설적이며, 그의 생각보다 일이 삐걱거릴 가능성을 검토할 정도로 신출내기일 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그럼 일단 성에 갑니까?”
“체포된 건 맞으니까.”
예를 들어 이렇게 말이다. 협업이란 이름으로 엮이자마자 이 포승줄을 도로 푸는 인간들이 있는가 하면, 여러가지 이유로 풀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사제의 경우는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겠지. 데스브링거는 앞으로 쉬어야 할 한숨의 수를 헤아려 볼까, 하다 포기했다. 그럴 바엔 꾀를 내는 게 더 효율적이다.
“성에 가면 수감된 해적들이 많겠네요?”
“그렇다. 문제 있나?”
“그 해적들한테서 정보를 좀 뜯어볼까 해서요.”
그건 네 업무가 아닌데? 대번에 눈총이 들어오지만 데스브링거는 그간 해온 일의 짬으로 가볍게 얼굴에 철판을 깐다. 사제가 이렇게 나와도 일단은, 당장 체포가 급선무인 사람에게 좀 더 넓은 바다를 보여 줄 필요가 있다.
“네놈, 정보가 진짜 있는 거냐?”
“그 전에 일단은, 여기에 해적들이 왜 모였는지 부터 알아야 할 거 아니에요.”
그래야 나중에 무슨 일이 생겨도 가닥 잡기 쉬울 거고. 제 말 맞죠? 도적은 수사의 기초를 철판 대신 입술에 내바르며 제법 담백한 말을 한다.
사제는 가늠해 보았다. 일반 사람들이 앞으로 고통받을 시간, 이 일의 규모와 크기, 저가 해야 할 일들, 몇 초의 침묵과 몇 번의 깜빡임, 모래와 침묵이 깔린 이 바닥의 단 몇 걸음이 지난다. 그녀는 경험이 적을 지언정 똑똑하고 똑바른 자였다.
“뜯는 건 네가 주로 해라.”
“아니, 예. 예?”
“네 녀석도 네 군식구 챙기고자 온 게 아닌가?”
그럼 열심히 일 할 것 아닌가. 데스브링거는 기막힌 사제의 말에 조금 놀랐다. 그게 맞긴 한데, 보통 만나자마자 설득당해서 좋다고 휘말리지 단박에 사람을 믿어버리고 이런 식으로 일을 진행하려 하지는 않는데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으나 저 바다의 윤슬이 눈부셔, 눈을 감는 것으로 마저 대답했다. 긍정의 침묵이라 받아들인 사제는 성에 도달했을 때 그를 풀어주었다.
저러다가 뒤통수 맞으면 어쩌려고? 내가 한 말이 다 거짓말이면 어쩌려고? 뭉근한 심해의 어둠이 데스브링거의 명치 언저리를 조였다가 도로 풀어진다.
“그럼 저녁에, 이 자리에서 다시 보도록 할까.”
“…예 뭐. 아, 체포할 때도 이렇게 가면서 뭣 좀 물어보고 그러십쇼.”
“조언 고맙다.”
예에. 바다의 무법자들에 의해 가라앉은 도시에 돌연 들이닥친 사제는 도적의 눈에는 참으로, 태양이었다. 해변가의 바다동굴 쯤이나 될락 말락 한 저는 글쎄, 맡은 소임 있으니 이제 발 빠르게 움직여야지.
군식구, 그에게도 챙겨야 할 사람들이 있었고 찾아야 할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사실 적시 명확히 하는 바람에 책임감이 별안간 무겁게 생긴 그다. 발걸음이 아까보다 가볍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재빠르기 위해서는 가벼워야 했다.
그녀가 아는 바, 이곳은 분명히 바다를 숭상하는 곳이었다.
이를 조금 더 납작한 말로 설명하자면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쎄고 쎘다는 소리다. 얄팍한 미신, 그저 허무맹랑한 괴소문, 흘러가면 한 달 내로 묻힐 신비하기만 한 이야기. 신전에서 자란 엄격한 이단심문관에게, 그 지역 고유의 신앙이라면 모를까 미신 정도는 생활 관습의 일부라고만 여겨졌다. 그것도 아니라면 악마숭배자들이 숨어 든 지표거나.
그런데 웬걸, 도적의 조언을 따라 행동했을 때 튀어나온 이야기는 전혀 색달랐다. 미신을 좇아 이곳에 몰려 든 것은 맞지만, 그 행동 방침이 신을 믿고 바다를 믿는 뭇사람들 보다는 몽타주를 보고 범인을 잡기 위해 열중하는 수사관과 비슷하지 않나.
수사관보다 조금 더 적당한 단어가 있을 텐데. 예를 들어, 사기 치기 딱 좋은 인간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꾼들 말이다. 적어도 처음에 그녀가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반복해서 정보가 쌓이다 보니 슬슬 사제를 위해 어여쁘게 꾸민 이야기가 아니라, 이 바다 너머까지 퍼져 버린 비극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바다를 돌아다니는 수많은 배들이, 바다 사람들이 그리도 바다를 부르짖는 이유란 무엇인가.
아주 간단하게도 그곳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들은 바다 위에 배를 띄우고 항해를 해야만 했다. 바다가 부리는 변덕을 전부 뚫어 내고, 그들이 아는지 모르는지도 가늠할 수 없는 망망대해를 목숨을 걸고 횡단해야 했다.
그렇다면 건너지 못한 배들은 어찌 되는가. 사제는 쿵쿵, 투박하고 빠른 걸음으로 성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직 이 자리에 도적은 오지 않았다. 도망쳤는가? 그렇지는 않을 텐데.
설령 그렇다 한들 이 도시에 있는 한 다시 만날 수는 있을 것이다. 발목까지 찰랑이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그녀는 소문과 미신의 종합을 기억 속에서 다시금 끄집어 낸다. 건너지 못한 배들은 어떻게 되는가.
그들은 보물선이라는 이름 하에 바다 아래에 가라앉는다. 그걸 노략하기 위한 명목으로 구조선이 가기도 하였고, 말 그대로 해적들의 먹이가 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는 그래 왔다.
이리 해적이 몰리게 된 까닭은 다름 아니라, ‘떠 있는 보물선’ 때문이었다. 가라앉지도 않은 채 다만 항구에서 출발할 적에 품은 보물들을 가득 싣기만 한, 사람 하나 없는 거대한 배. 일확천금의 기회가 널리 퍼졌는데 돈과 도박에 관심 많은 작자들이 오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겠지.
유령선. 그녀는 이곳에 눌러 앉으려 작정한 해적들 사이에 퍼진 이야기를 한 단어로 요약했다.
몰린 해적들은 겸사 겸사 이 항구 도시의 고혈을 빨기 시작했고, 약탈을 일삼으며 점점 도시를 장악해 갔다. 케이프 속의 단검이 달빛을 받기 시작할 때쯤 데스브링거의 심문은 어느 정도 끝이 났다. 그는 돌계단을 뛰쳐 올라, 아무튼 이제 한 배를 탄 사람 하나를 찾았다.
시간이 늦은 죄로 그는 이단심문관의 억센 손길에 어깨를 콱 붙잡혀야 했지만.
“늦는다!”
“뭡니까요?!”
“왜 이렇게 늦지?!”
“댁이 며칠간 여기에 쌓아 놓은 인간만 몇인데요!”
그러니까 제발 이것 좀 놓으라고 아프다며 또 엄살을 부린다. 저와 키는 비슷한 것이 제법 연약하다고 핀잔을 주니 도적은 이때다 싶어, 그러면 요령 없이 저렇게 사람만 산만큼 쌓아 둔 건 누구냐고 투덜거렸다.
그래도 탈출은 안 했군, 사제는 속으로 생각한다. 여차 하면 도망 쳤을 사람이 얼굴을 비추는 건 기꺼운 일이다. 뺀질이처럼 뻔뻔하게 군 것 치고는 맡은 바 할 일을 다 하고 정직하게 돌아오자 약속한 곳에 걸음하지 않았나.
“유령선 이야기는 흘러 흘러 들으면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알고 있었나?”
“저야 뭐, 정보 수집이 업인 사람인데.”
에헴, 과장된 듯 헛기침을 하는 도적의 콧대가 살짝 높아진다. 수집한 정보를 모으는 과정에서 작게 아옹다옹 다투는 일은 순식간에 일상처럼 익숙해졌다. 그럼 미리 말해 주는 게 낫지 않았나! 큰 소리로 호통을 치니 이런 일도 요령 생겨 봐야죠, 샌님? 하고 받아 치는 것이다.
게다가 당신과는 달리 나는 사람을 쉽게 믿고 자시고 할 수 없단 말이지. 데스브링거의 암녹빛 눈이 사제의 신록을 닮은 눈을 힐끗 본다. 평생 의심의 틈바구니서부터 아주 작은 단서만을 취합해 득달같이 달려들어야 하는 신세인 지라. 저 맑은 눈을 마주치면 돌이켜야 하는 것이 너무 많은 게 바로 자신이었다. 시선을 치우고 표정을 갈무리한 도적은 이어 설명을 시작한다.
“원래 이 지역이 진주조개 산지인 건 알고 계시죠?”
“그래, 알고 있다. 성주도 나에게 말했었고.”
높임말 어디 갔어요? 눈짓으로 채근하고 싶어도 이단심문관 앞에서 어찌 할 성주는 얼마 없다. 더군다나 그녀는 귀중한 증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 더욱 그럴 것이다. 하여튼 높은 사람이란, 무의식적인 기피 심리가 고개를 치켜 들었다. 어금니를 가볍게 악물어 도로 거두어 버린다. 지금 와서 쓸모 없는 감정은 일단 꺾는 게 맞다.
“이백 년 전에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고.”
“맞아요. 그런데 그 당시에 사건이 있었나 봐요. 정보 길드에도 최신 정보로 업데이트 할 때마다 이 지역 관련 정보로는 꼭 있던데.”
“아는 바 있나?”
어느새 인퀴지터는 이 지역의 미신에 홀딱 빠진 사람 같았다. 데스브링거는 분명 저가 해적의 본거지를 조건으로 내건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 앞의 사제는, 그건 이제 기억도 안 난다는 듯이 굴고 있으니. 얕은 한숨이 도적에게서 부터 나왔다.
“아는 바는 있지만, 그 전에 우선 할 일은 있죠?”
“가면서 듣겠다.”
“뭐야, 안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무슨 뜻이지? 난 애초에 해적의 일과 관련된 모든 걸 듣고자 했을 뿐이다.”
“아, 그러시구나.”
지금 빈정댄 건가? 맞습니다요, 빨리 가기나 하죠? 또 다시 이어지는 투닥거림 속에서 달이 초승을 그리며 웃었다.
-
항구 도시가 엉망이 된 결정적인 이유는 등대였다.
배가 오고 가는 도시인 만큼, 이 도시에서 필수불가결한 공공 건축물이라 한다면 그 누구도 뭐라 할 것 없이 등대를 제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이 도시에 있어서 등대란, 비단 배들의 앞길을 알려 주고 신호를 보내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사람들의 삶까지도 비추어 주는 하나의 별과 달과 태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걸 해적들이 모르지는 않을 터다. 외려, 너무 잘 알고 있는 바다의 무법자들이다. 등대의 중요함을 착실히 아는, 거칠게 사는 법 밖에 모르는 와중에도 그 하나만은 아주 잘 아는 바다 위의 양아치 무리들. 그들은 도시를 점거하기 위해 등대를 먼저 점거했다.
그러니 해안이 천천히 엉망이 되고, 교역이 서서히 끊기는 게 아니겠는가. 인퀴지터는 새삼 자신이 얼마나 미친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새 손님을 맞을 준비가 안 된 항구에 무사히 발을 디딘 것은 과연 신의 안배인가.
등대는 해안가의 깎아지를 듯 높은 절벽 위에 있었고, 그 주변과 절벽 밑에 온갖 판자집들 그리고 불법 선박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소금기 가득 서린 차가운 바람이 인다. 혹은 이 도시를 가엾게 여긴 바다의 안배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바닷새의 둥지 하나 없이 조용한 와중에 데스브링거는, 사제의 옷깃에 묻은 깃털 하나를 솔찬히 떼어 준다. 끝이 회색인 것을 보니 갈매기의 깃털이다. 여기까지 오는데도 모르고 있었나, 맹랑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맹해 보이는 사제를 그는 수풀 속에 숨긴다.
“이곳에 있는 건가?”
“적어도 우두머리 하나 정도나 그에 준하는 놈은 있겠죠.”
혹은 여길 탈환하기만 해도 이 도시에 막힌 혈류가 뚫려 흐를 겁니다요. 소근, 나뭇잎들이 바람에 떠는 소리 사이로 목소리를 숨긴다.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저희 둘로 되는 겁니까?”
“겁이 난다면 빠져라.”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넌 마저 구할 사람이 있지 않나.”
달빛이 순간 사제를 비춘다. 보름이 아닌데도 그 빛이 제법 밝게 느껴지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구할 사람, 그렇지, 있지. 정보원들을 찾아 내서 조금은 독촉하고, 다친 곳이 있으면 치료하고. 만일 해적들한테 팔아 넘긴 정보가 있다면, 다시 말해 배신한 정황이 있다면 기꺼이 칼을 빼 들어야지.
그러기 위해 온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지킬 것이란, 정보가 흐르는 길이 1순위였고 저와 종종 담소 나누던 이들이 2순위였다. 후우, 부자연스러운 바람이 그의 입 안에서 불었다. 저는 이 사제와는 정말로 다른 사람임을 매 순간 실감한다.
“됐습니다요. 이렇게 된 거, 뭐.”
“그런가? 정말 괜찮나?”
“…거, 개죽음 당하는 꼴은 못 봅니다?”
그리고 사제는 이 도적이 무언가를 각오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죽음이나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단호함이 살풋 느껴지는 목소리는 아까와는 조금 더 명확하고 매끄러웠다. 동시에 조심스러웠다, 그 결정마저 후회할까 걱정하는 사람처럼.
사제라는 직업은 갈팡질팡하는 이들의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절벽 위와 아래가 있다. 빠져나가 혼선을 주는 인간이 있을 거다. 어떻게 해야 하지?”
“…좋습니다. 제가 등대 쪽으로 돌파해 볼 테니, 댁은 탈주하는 것들을 차례대로 으깨 버리십쇼.”
“안 다칠 자신은?”
“다치면 치료해 주십쇼!”
투닥거리다가 미운 정이라도 들었는지 그새 서로에게 넉살이 붙었다. 바닷바람은 차가웠지만 이 정도면 견딜 만 했다.
견딜 만 하다면 이제, 죽음을 가져오는 자와 이단심문관의 심판이 내리 꽂힐 시간이지 아니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