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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끝났다.

마왕과 일곱 대악마는 완전히 패퇴했다. 마침내 인간과 악마 사이에 벌어진 기나긴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이다.

 

사탄이 마치 잿가루처럼 완전히 사라진 직후, 악마기사 또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함께했던 이들 모두 온전한 몸은 아니었지만, 가장 앞에 서서 사탄과 직접 맞부딪힌 악마기사에 비할 바가 아니었기에 일행들은 즉시 자신들이 해야 하는,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인퀴지터와 베르세르크는 악마기사를 부축해서 안아 들었고, 아크메이지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긁어모은 마력으로 악마기사에게 회복 마법을 걸었다. 마이스터는 모든 것이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데스브링거는 상세한 소식을 전할 겸 병동에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후방으로 달려갔다.

 

악마기사는 병상으로 옮겨진 후로도 오랫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심각했던 몸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고, 검게 물들었던 오른팔이 원래의 피부색을 깨끗하게 되찾았음에도 말이다. 매일같이 진행되는 치료에도 여전히 혈색이 돌지 않는 창백한 낯과 미동 없는 몸뚱이 탓에 신전 내에서도 이미 죽은 게 아니냐는 소리가 돌았지만, 미세하게 들려오는 느린 숨소리와 때때로 움찔거리는 사지 말단이 명백히 그가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악마기사보다도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난 일행들은, 움직여도 좋다는 치료사들의 허락과 동시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무작정 악마기사의 곁을 지키고만 있기엔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부서지고, 망가지고, 무너져서 아이 손 하나라도 더 보태야 할 만큼 절실한 상태였다. 그리고 만약 악마기사라면 일행들이 제 곁을 지키고만 있는 걸 원하진 않을 터였다.

 

사탄과 대악마들은 전부 죽음을 맞이했다지만 그들 휘하에 있었던 악마들과 마물들은 도리어 족쇄가 풀린 것처럼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하여 인퀴지터를 비롯한 일행들처럼 악마에게 대적할 수 있는 이들은 하루가 멀다고 전투에 투입되었다. 그나마 적들이 오합지졸에 약화한 상태였기에 인류 측 사망자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한편, 완전히 힘을 잃어버린 악마 계약자들과 천지 분간 못하고 날뛰는 악마 숭배자에 대한 조사는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마탑과 신전이 도맡아 진행했다. 다만 오랫동안 이어진 서로에 대한 불신과 의견 충돌로 인해 조사가 시작도 되기 전에 무산될 뻔했으나, 인퀴지터와 아크메이지가 각각의 대표로서 어떻게든 중재를 시도했고, 데스브링거도 정보 길드의 대표로서 이 사태에 끼어든 덕분에 어떻게든 조사대가 꾸려질 수 있었다. 서로서로 의심하고 감시하는 불편함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차라리 조금의 의구심도 없는 최선의 결과를 내기에는 딱 좋았다.

 

그렇게 급한 불들이 하나둘씩 꺼지고, 간신히 한숨 돌릴 만해졌을 무렵.

마침내 악마기사가 눈을 떴다.

 

깨어난 직후부터 자신이 죽지 않았음에 후회라도 하는 양 무기력하게 굴던 악마기사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장 달려온 인퀴지터와 데스브링거의 눈물 어린 호소를 장장 일주일을 듣고 나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기력을 찾았다고 하기엔 여전히 감정이 보이지 않는 메마른 표정과 한 줌의 생기도 느껴지지 않는 무기력한 눈빛이었지만, 적어도 악마기사 스스로 식사를 챙기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일행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최우선으로 진행된 마탑과 신전의 검진에서 악마기사는 품고 있던 마기가 완전히 없어졌음을 인정받았다. 없어진 건 마기뿐이고 이제까지 치환해서 사용 후 누적되어 왔던 강대한 마력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었기에 그의 몸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상태였다. 물론 예전의 기록에 비하면 한참은 모자랐지만, 그 사실을 가장 잘 느끼고 있을 악마기사가 아무런 내색도 보이지 않았기에 일행들과 검사관들 또한 이 사실을 입 밖으로 내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검진 이후로 며칠간 진행된 추적 검진에서도 몸 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악마기사는 그 길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도움이 필요한 곳들을 찾아다녔다. 머리색은 여전히 반반이고, 더는 안대로 가리지 않아 온전히 드러난 눈의 색 또한 오드아이인 채였지만 아무도 그를 아는 체하거나 꺼리지 않았다. 일종의 배려였다. 악마기사는 그 배려를 기꺼이 받아들인 채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몰두했다.

 

 

 

차근차근 재건되어 가는 도시에 일행들 모두가 완전히 익숙해졌을 때쯤, 일행들에게는 변화가 찾아왔다.

 

요 며칠 사이, 어딘가에 정신이 팔린 것처럼 넋을 놓고 있던 악마기사가 저를 걱정하는 일행들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것처럼 모두를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자재 옮기는 일을 돕느라 멀리 나가 있던 베르세르크까지 늦지 않게 도착한 걸 보면 악마기사가 시기적절하게 불러 모은 것 같았다.

 

“…그동안, 참 많이 감사했습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악마기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낯선 듯, 낯설지 않은 부드러운 목소리가 방 안을 물들임과 동시에 악마기사는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악마기사가 말을 꺼내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일행들 모두 순간적으로 당황한 낯이 역력했지만, 곧장 화를 내거나 따지고 들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자신들끼리 이야기해서는 풀리지 않는 ‘모순’이 악마기사에게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전혀 달라진 말투 또한 그중 일부라고 받아들였다.

 

악마기사는 잘게 떨리는 손을 꾹 모아 쥐며 천천히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중간중간 머뭇거리거나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부분이 있었지만, 일행들은 굳이 세세하게 따지고 들지 않았다. 이미 늘어놓은 이야기만으로도 그가 겪어야 했을 부조리와 불합리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악마기사의 이야기가 끝나고 간단한 질의응답이 오갔다. 악마기사는 자신이 답할 수 있는 선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답을 내놓았고, 일행들은 그걸 토대로 그동안 자신들이 놓쳤던 것이 무엇인지 정리해나갔다. 그렇게 한창 일행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을 때.

 

“악마기사……. 혹시… 제가 생각하는 게… 맞습니까?”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럴 때만큼은 눈치가 참 빠른 인퀴지터였다. 벌써 싱그러운 녹색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악마기사로서는 유일하게 일부러 숨겼던 부분이었기에, 가능하면 그들이 이 사실을 늦게 눈치채길 바랐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온 이상, 숨기는 의미가 없었다.

 

“…그래. 시간이 얼마 없을 거 같아.”

 

오늘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 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평온하고 상냥한 음색이었다. 인퀴지터는 와락 악마기사를 끌어안았다. 분명 이런 갑작스러운 접촉을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인퀴지터는 이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이 가슴 터질 것 같은 감정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악마기사도 그걸 느낀 것인지 갑작스러운 접촉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 없이 인퀴지터의 등을 천천히 도닥일 뿐이었다.

 

“자네, 자주 검진 받으러 다니지 않았는가. 나는 이상이 있다는 말을 전해 들은 바가 없네.”

“음……. 그게……. 저도 끝이 어떻게 될지는 장담할 수는 없어서요.”

“뭐야, 아는 게 있으면 제대로 말하라고.”

“…그러니까. 나는,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너라면 알아듣겠지, 하는 함의가 듬뿍 들어간 문장이었다. 마이스터를 바라보는 악마기사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반대로 악마기사를 마주 보는 마이스터의 표정은 굉장히 험악해졌지만 더는 무어라 말을 더하지 않았다.

융통성이 없거나, 일부러 눈치 없는 짓을 할지라도 기본적인 머리 자체가 모자란 이들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악마기사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도 다들 이해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주 작은 가능성에 매달리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인지라.

 

“나리……. 그래도, 그래도 다시 한번 검진받아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요.”

“맞다. 그사이에 변한 게 있을 수도 있지 않나.”

“그거야,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번거롭겠지만, 부탁함세.”

 

말에 담긴 마음이 묵직하게 전해진다. 말꼬리를 늘어트리는 악마기사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붉어졌다. 가장 가까이서 악마기사의 얼굴을 바라보던 인퀴지터가 이 변화를 기민하게 눈치챘다.

악마기사는 검진을 다시 하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어째서? 마기가 완전히 없어진 게 증명된 이후로, 실험체를 바라보는 것 같은 노골적인 시선은 없어졌다. 악마기사도 그런 마법사들의 변화를 굳이 걸고넘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까지 검진받으면서도 이렇다 할 마찰이 없었던 걸로 알고 있었다. 사실은 그게 아니었나? 홀로 생각의 생각을 거듭하던 인퀴지터는 마침내 지금까지 떠올리지 못했던 한 가지 가설을 끄집어냈다.

 

“악마기사……. 설마, 떠나시는 날을… 알고 계신 겁니까?”

 

형편없이 흔들리는 목소리에는 인퀴지터의 심정을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었다. 아크메이지나 마이스터도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인지 인퀴지터의 말에 눈동자가 흔들렸다. 베르세르크도 한숨을 지었고, 데스브링거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이 표정이 일그러졌다.

 

“진짜… 진짭니까, 나리?”

 

반면 악마기사는 아차, 하는 표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설마 거기까지는 유추해내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한편으로 비교적 정확하게 자기 생각을 짚어낸 인퀴지터를 대견하게 여겼다. 악마기사는 선명히 느껴지는 양가감정을 애써 수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아마도, 한 달이지 않을까 생각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악마기사의 양팔에 각각 인퀴지터와 데스브링거가 매달렸다. 양팔이 묶인 악마기사로서는 둘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미안함을 느끼고 있기에, 별다른 말 없이 손 닿는 범위에서 둘을 조심스럽게 다독일 뿐이었다.

 

“너무 빨리 떠나지는 말게나.”

“하하……. 그게 제 맘대로 되는 게 아닌걸요.”

“…그래도 말일세.”

“예……. 남은 시간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전이라면 꿈에도 꿀 수 없었던 보드랍고도 안쓰러운 미소였다.

 

 

 

이후로 특별히 무언가가 바뀐 것은 아니었다. 이 세상은 여전히 복구해야 할 것들이 넘쳐났고, 일행들은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에 손을 보탰다. 복구 작업에 박차를 가할수록 서로 엇갈리는 일이 잦아졌기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일행들은 아침마다 하루 일정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악마기사가 한 달의 유예를 이야기했으나, 확실한 게 아니었기에 혹여 무슨 일이 생기면 곧장 연락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걱정과 달리 한 달이란 시간은 별다른 일 없이 지나갔다. 누군가에게는 순식간에 빠르게 지나간 시간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느리게 흘러간 시간이었다.

 

“다들 좋은 아침.”

 

지난 한 달간 그랬던 것처럼 모두가 식탁에 모여 앉았다. 오랜만에 숙소에서 밤을 보낸 마이스터도 함께였다. 대식가들이 많다 보니 각자 자기 앞에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내려놓은 것뿐인데도 커다란 식탁 위가 가득하게 차 있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풍경이었다.

 

오늘이 악마기사가 일전에 말했던 예정일임을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섣불리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저 평소와 다름없이 일정을 묻고, 소소한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다들 바쁘겠지만, 잠깐만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식사가 다 끝난 직후, 악마기사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임을 감지한 것인지 식사 준비를 도와주는 이들이 빠르게 식탁 위를 치우고 식당에서 물러나자, 악마기사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몰라 모두가 긴장한 것이 무색하게도 악마기사는 인벤토리에서 작고 고급스러운 색의 케이스 여러 개를 꺼내어 일행들 앞에 하나씩 내려놓았다.

 

“생각보다 재료가 쉽게 구해지지 않아서 예상보다 늦어졌어요.”

 

이제는 예전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온화한 말투가 일행들의 정신을 일깨우긴 했지만, 눈앞에 놓여 있는 케이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고가의 물품이었다. 이게 대체 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일까. 일제히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 오를 것만 같은 상황에 악마기사는 살포시 웃으며 자신 몫의 케이스를 열어 내용물이 잘 보이도록 내밀었다.

케이스 안에 든 것은 손가락 두 마디 정도나 될까 싶은 섬세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장식 브로치였다. 어떻게 보아도 마이스터의 솜씨가 분명했기에 일제히 시선이 마이스터를 향했지만, 마이스터도 가볍게 어깨를 으쓱할 뿐 시선은 악마기사를 향해 있었다.

 

“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재료는 제가 찾았고, 제작은 마이스터가 고생해줬어요.”

 

악마기사의 말을 간추리자면, 가지고 있던 잡동사니 중에 어디서 섞여 들었는지 가공이 안 된 원석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냥 버리기에는 아깝고 활용할 방법을 모색하다가 기념이 될 만한 물건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기왕이면 우리끼리 똑같이 간직할만한 걸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제가 직접 해보려고 했는데 좀처럼 쉽지 않아서 결국 마이스터에게 의뢰 맡겼지만요.”

 

그제야 일행들은 자신들 앞에 놓인 케이스를 조심스럽게 열어서 내용물을 살피기 시작했다.

인퀴지터와 아크메이지는 목걸이나 줄 장식에 달 수 있는 펜던트 톱, 데스브링거는 체인이 달린 카라핀, 베르세르크는 브로치였다. 마지막으로 마이스터의 것은 부토니에르를 닮은 장식 핀이었다.

 

“나리……. 이걸, 선물로 주신다고요?”

“맞아. 모두를 생각하면서 고른 것들이야.”

 

데스브링거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케이스에서 손을 떼고 양손을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이 마치 항복하는 자세 같아서 악마기사는 괜히 헛기침으로 웃음을 참아냈다. 한눈에 봐도 다양한 보석을 다양하게 가공해서 제작한 물품이었다. 이미 이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높았지만, 악마기사가 말한 대로라면 그 가치는 끝도 없이 상승하는 종류라고 봐야 했다. 희소성뿐만 아니라, 의미적으로도.

 

“이리 귀한 것을 받아도 되는 겐가.”

“그럼요. 우리만을 위한 물건인걸요.”

 

아무렇지 않다는 것처럼 말하는 악마기사가 도리어 놀라울 따름이었다.

 

“전우야, 혹시 이 녹색이 작은 사냥꾼인가?”

“맞아요.”

 

한참이나 장식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베르세르크는 데스브링거의 보석을 정확하게 짚어낸 후로 어렵지 않게 다른 일행들의 보석 또한 정확히 알아맞혔다.

선명한 붉은색의 ‘홍진주’는 인퀴지터, 분홍빛의 ‘장미휘석(로도 나이트)’은 마이스터, 투명한 금빛의 ‘호박(앰버)’은 베르세르크, 하얀색의 ‘백산호’는 아크메이지, 청록색 줄무늬의 ‘마노(아게이트)’는 데스브링거, 마지막으로 짙푸른 색의 ‘청금석(라피스라줄리)’이 악마기사였다.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저, 저도!”

 

악마기사는 모두가 저토록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평소에도 자주 하고 다닐 수 있도록 오염 방지와 파손 방지 후가공도 요청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마이스터가 할 수 없는 일이라서 추가금이 꽤 많이 붙긴 했지만, 충분히 할 만한 일이었다.

 

“특별한 기능 같은 게 있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언제 어느 때라도 쓸 수 있도록 제작했으니까요. 항상 가지고 다녀주세요.”

 

…자, 그럼. 얼른 다들 임무 하러 해산!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한 악마기사가 먼저 성큼성큼 숙소를 벗어나는 걸 시작으로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결국 이날도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하고, 시간이 맞는 사람들끼리 점심을 먹고, 숙소에 돌아와 휴식 시간을 가지고, 다 함께 모여 저녁을 먹고,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 그런 평범한 날이었다.

 

 

 

며칠 뒤, 악마기사는 조용히 머나먼 길을 떠났다.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모두가 잠든 시간에 홀로 훌쩍 떠나 버린 것이었다. 떠나는 길이 고통스럽지는 않았는지 깊이 잠든 것 같다는 생각만 드는 평온한 표정이었다. 최근에 많이 풀어졌다고는 하지만 표정이 그렇게 다양하지는 않았던 사람인지라 이토록 평온한 표정은 한없이 낯설었다.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우리는 이 표정을 당신이 떠난 후에나 보게 되네요. 악마기사를 원망할 일이 아니라는 게 명백했음에도 조금은…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장례식은 일행들만이 참석한 채, 장례를 주관하는 사제 한 명이 모든 진행을 도맡은 채로 빠르고 조용하게 진행되었다.

악마기사의 몸이 차가운 관 안에 눕혀지고, 새하얀 꽃들이 악마기사 주변에 빼곡히 채워졌다. 어떻게 알았는지 청산호가 급히 보내온 아주 많은 양의 별꽃이 악마기사의 주변에 사뿐히 얹어졌다. 어색하게만 느껴지던 다른 꽃들과 달리 별꽃들은 마치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악마기사와 잘 어우러졌다.

 

일행들은 선물 받은 칠보 장신구들을 착용하고 장례식에 임했다. 누워 있는 악마기사의 가슴팍에도 브로치를 매달아 두었다. 칠보 장신구들은 신전 내부에 잔잔하게 쏟아져 내리는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반짝였다. 눈이 시릴 만큼 강한 빛이 아니었는데도 자꾸만 눈가가 시큰해졌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시지요.”

 

장례를 이끌어가는 사제의 말에 따라 마이스터가 가장 먼저 인사를 나누기 위해 걸어 나왔다.

관 앞에 멈춰선 마이스터는 품에서 작은 케이스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던 반지를 꺼내 악마기사의 손에 조심스럽게 끼워 넣었다. 이 칠보 장식이 달린 반지는 처음 의뢰받았을 때부터 부탁받은 물건이었다. 때가 오면 어떻게 써야 하는 물건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고는 했지만, 설마하니 그것이 악마기사 본인의 장례식일 줄은 마이스터도 좀처럼 예상치 못했다.

 

마이스터를 시작으로 일행들은 순서대로 악마기사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아무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지만, 일행들은 서로의 인사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원하던 곳에 무사히 도착했기를.

그곳에서는 힘들지도, 아프지도 말기를.

이제까지 고통받았던 기억에 너무 얽매이지 않기를.

우리의 존재와 기억이 당신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힘들었던 기억을 모조리 잊게 해줄 만큼 좋은 기억이 많이 생기기를.

 

장례식이 진행되는 내내 그 누구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집어삼킨 눈물이 속에서 쌓이고 쌓여 강이 되고 바다가 될지라도 악마기사를 배웅하는 길에 눈물로서 미련을 남기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웃으면서 보내주는 게 제일 좋았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이미 눈물을 억누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한계를 맛보고 있었다. 하여 악마기사가 어떠한 미련도 가지지 않고, 뒤를 돌아보는 일도 없이 가고 싶었던 곳을 향해 가볍게 훨훨 날아가기만을 깊이 바라고 또 바랐다.

 

“이별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떠나는 사람에게도, 남겨진 사람들에게도 모두 서로에게 좋은 추억이었기를 바라는 것뿐이지요.”

 

어디선가 봄바람처럼 따사롭고 보드라운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떠나는 자여, 당신의 업적에 경외를. 당신의 희생에 감사를. 당신의 안식에 안온을. 그리하여 바라옵건대 오래도록 신의 품에서 안락하시길.”

 

마침내 악마기사의 모든 여정이 막을 내렸다.

그 누구도 슬픔으로 무너지지 않은, 행복한 엔딩이었다.

분명.

AquaRyuichi Sakam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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