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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퀴지터는 새까만 세상에서 눈을 떴다. 본능적으로 제 곁에 신이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익숙하게 자세를 정돈하고 두 손을 모아 무릎을 꿇으며 생각했다. 그녀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용사의 계시를 받는 순간을.

 

신의 명령에 의문 없이 복종하던 과거의 자신을 말이다.

 

“…신이시여.”

 

순진하고, 무지하고, 단단하며, 어리석었던 자신을.

 

“어째서 저였습니까?”

 

같은 이유로, 어째서 그였습니까?

 

용사가 세상을 직접 경험하며 깨달은 몇 가지 배움이 있었다.

 

모든 일에 우연 따위는 없다. 그 속에는 생각이 짧은 자신이 감히 생각하지 못할 신의 안배가 깃들어 있었다.

 

그렇기에 그럴 리 없다는 말만큼 무용한 것이 없었다.

 

어떤 불행은 갑작스레 닥쳐오며, 어떤 현실은 소설보다, 연극보다도 개연성 없고 갑작스러워 한낱 미물에 불과한 사람들을 혼란과 고난에 빠뜨리곤 한다.

 

하지만 일어나는 모든 사건엔 이유가 있었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인퀴지터는 질문을 던지는 종을 향해 내리꽂히는 수백, 수 만개의 시선을 마주했다. 대답을 기다리고 있자니 새카만 공허 한가운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목소리라기엔, 조금 더 본질적인 무언가가.

 

[-------]

 

“……?”

 

[---두….]

 

반짝이며 어둠뿐이던 세상에 빛 하나가 떠올랐다. 밤하늘에서나 보이던 별빛과도 같아보였다. 하지만 유독 선명하고 분명히 반짝이는 그 별은, 틀림없이 북쪽을 향해 떠 있었다.

 

[--만두.]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인퀴지터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이 세상의 언어가 아닌 것처럼 이질적으로 들렸다.

 

전에도 이랬었나?

 

아니 그보다도, 신의 목소리가 유독 친숙하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만두.]

 

“…….”

 

자신은 들어본 적이 있었다. 이런 미성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작고 희미했지만 아는 자의 목소리였다. 왜 신의 장소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대체 누구지?

 

인퀴지터는 혼란스러움에 심호흡을 이어가며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그럴 리 없다는 말만큼 무용한 것이 없다는 말을 되새기며.

 

용사를 향한 목소리는 여즉 계속되었다. 마치 온전히 제 뜻을 전하려 노력하듯이, 계속 한 단어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의 의지에 응하여, 인퀴지터 또한 희미한 목소리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내 그 노력이 빛을 발하고, 마침내 단어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김치만두야.]

 

“…….”

 

[미-해.]

 

“…….”

 

[미안해.]

 

“…….”

 

[정- 미안해….]

 

신은 무엇을 그리 사과하고 있는 걸까. 알 수가 없었다.

 

인퀴지터는 떨리는 한숨을 내쉬며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제 볼을 감싸오는 다정하고 차가운 손길이 느껴졌다.

 

어둠속에서 뻗어나온 손이 자신의 턱을 받치며 천천히 들어올리자, 양순한 어린 양의 고개가 순순히 움직임에 따른다.

 

어둠 속에 빼곡이 박혀있는 수천 수만개의 눈이 차례로 감기기 시작하여, 마지막으로 남은 세 쌍만이 인퀴지터 앞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첫째로, 붉은 산양의 눈동자가 무심히 눈을 감고.

 

둘째로, 잿빛의 어린 눈동자가 미숙한 눈을 감고.

 

셋째로, 한쪽은 말린 장미꽃이 색이 바랜 듯 옅은 붉은 빛의 눈, 그리고 불타고 남은 세상의 재를 그러모아 빚은 회색빛의 동공이 다정히 자신을 지켜보다가, 아쉽다는 듯 눈을 감았다.

 

그것을 끝으로. 신은 용사의 얼굴에 닿아있던 자신의 손을 거둬갔다. 얼핏 목격한 창백한 손은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그 손이 계속 자신에게 닿아있었던 걸로 보아, 신은 자신에게서 무언가를 앗아가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그래, 그것이 신의 뜻이라면 따를 뿐이다. 제게서 가져간 것이 넘치는 무력이든, 샘물같이 솟아오르는 신성력이던간에 상관없었다.

 

“……어?”

 

하지만 용사 본인조차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을 빼앗겼음에, 그녀는 멍한 목소리를 내며 의문을 표했다.

 

지독히도 익숙하게 느껴지던 작열통이 사라진 것이다.

 

아.

 

인퀴지터는 그제야 목소리의 주인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허억!”

 

그의 정체를 떠올린 순간, 인퀴지터가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현실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다급히 상체를 일으키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 모습이 타인이 보기에는 조금 이질적으로 보였다.

 

불안해 보이는 용사의 얼굴에 천막을 지키던 데스브링거가 걱정스레 물었다.

 

“새, 샌님? 괜찮으신 겁니까?”

 

“악마기사…!!”

 

데스브링거의 물음에도, 용사는 반응하지 못하며 절박한 얼굴로 악마기사만을 찾아대었다. 도통 그녀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평소였다면 이성적으로 상황부터 물은 뒤, 쉬지 않고 자신이 필요한 곳을 향해 나아갔겠지.

 

“아, 악마기사는 어디 계신가!”

 

“왜 그러십니까? 일단 진정 좀 하십쇼. 나리는….”

 

“그분을 당장 만나 뵈어야 한다. 나는…!”

 

 

“진정해라. 그는 이 앞에 있다.”

 

인퀴지터와 데스브링거가 쌍으로 천막 안에서 허둥거리자, 베르세르크가 태연히 천막 안을 들추며 답해주었다.

 

“바, 바로 이곳에 말입니까?! 어디 계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도무지 평소의 인퀴지터 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녀가 허둥대며 급히 천막 밖으로 뛰쳐나갔다. 가까이 지내던 데스브링거 조차도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

 

“……아.”

 

허억. 헉.

 

일어나자마자 몸을 급하게 움직인 탓인지, 조금 가쁜 숨으로 인퀴지터는 천막 앞에 서 있던 장신의 기사 앞에 섰다.

 

“…정말 여기에, 계셨군요.”

 

“…….”

 

제 몸을 가리듯 망토를 두르고, 검은 보석으로 박제되어 버린 악마의 그릇이 용사의 앞에 서 있었다.

 

모습은 달랐지만 평소와 같이 말이 없다. 그것에 무의식적으로 안도를 느끼며 인퀴지터는 그제야 숨을 돌렸다.

 

그가 어떤 모습이던 간에, 곁에 있다는 사실만이 용사는 중요했다.

 

“…용건이 뭐지.”

 

“…….”

 

조금은 진정되어 보이는 그녀에게 악마기사가 물었다. 평소보다 조금 가라앉아 얼핏 얌전하게 들리는 목소리는 더욱 인퀴지터가 꿈꿨던 목소리와 퍽 닮아 있었다.

 

문득, 용사는 기이한 이끌림을 느꼈다.

 

바로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자에게, 반드시 물어봐야 한다고.

 

“…만두.”

 

“……!”

 

움찔, 기사의 무거운 어깨가 유독 가볍게 떨렸다.

 

묻지 않아도,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대답이 되었다.

 

함에도 묻는다. 상대에게 전하기 위하여.

 

“김치, 만두… 가 무슨 뜻의 단어인지, 혹시 알고 계십니까?”

 

“…….”

 

꾸욱 다물려 움직일 것 같지 않던 조각상의 입이 열렸다. 무시할 줄 알았으나 의외로 답은 돌아왔다.

 

“…모른다.”

 

“…….”

 

그래, 무시하고 지나칠 수 있는 시답잖은 질문임에도, 굳이 되돌아온 답변.

 

“…그렇군요.”

 

비언어적인 답을 돌려받은 용사의 눈에 납득의 빛이 이채를 띄었다.

 

문득, 유리에 실금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

 

 

 

 

 

 

 

 

급한대로 도시의 수복을 도운 일행은, 우선적으로 마이스터를 찾아가 악마기사의 몸을 검사받을 일정을 잡았다. 이유도 모른 채 그의 상태를 이대로 방치해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악마기사가 셔츠의 소매를 걷어 왼 팔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 후 마이스터가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이것저것 해댄 실험까지는 생략하겠다.

 

그 또한 마법사였다. 악마기사에 대한 걱정은 제하더라도 이런 특수한 상태에 호기심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수십 번 찔렀음에도 똑같은 모양으로 부러진 주삿바늘을 바라보며, 마침내 결론을 내린 마이스터가 입을 열었다.

 

“이건 옵시디언. 흑요석이다.”

 

“‘석(石)’ 이라면… 암석 이라는 뜻입니까?”

 

“아니, 이름만 그렇게 명명된 것 뿐, 자세히 따지자면 본질은 유리에 가깝지.”

 

“…….”

 

마이스터의 대답에 악마기사는 태연한 반응이었으나, 오히려 데스브링거가 소스라치며 물었다.

 

“유리라뇨…?! 그거 엄청 비싸고 귀하고, 하물며 잘 깨지는 물건 아니었습니까요?!”

 

“그렇긴 하지.”

 

여전히 무심하게 대답하는 마이스터에게 용사가 물었다.

 

“허면, 악마기사의 몸이 깨질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

 

“아니. 확신하건데, 물리적으로는 불가능 해.”

 

자신감이 깃든 대답에 데스브링거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걸 댁이 어떻게 확신합니까?”

 

“이래서 생각할 줄 모르는 멍청이들은…. 봐라. 이 반짝이는 드릴을. 금속 중 최고로 단단한 금강석으로 만든 녀석이야. 이 드릴로도 깨지지 않는다는 건 무슨 짓을 해도 물리적인 파괴는 불가능하다 이 말이지. 불에 녹지도, 물에 풀어지지도 않아. 어이 너, 통각은 있었냐?”

 

“없다.”

 

간결한 답이 마음에 든 듯 마이스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분을 살피면 분명 옵시디언이 맞는데 말이지... 원래 가벼운 충격에도 조개모양처럼 결이 쪼개지는 게 당연한 물건이거든.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파괴되지 않아. 일단 물리적으로 목숨을 위협받을 걱정은 할 필요 없다는 소리야.”

 

“…휴우.”

 

데스브링거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엔 이른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방식으로는 어떤가?”

 

아크메이지가 나서서 제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가 여태 유효한 타격을 받던 신성력이라던지, 마기에 반응하지는 않겠는가?”

 

“신성력을 몇 번 접해보았으나, 깨진 적은 없다.”

 

“나, 나리 미쳤습니까?! 그 상태로 신성력을 받으면 어떻게 될 줄 알고…!”

 

“…….”

 

태연한 악마기사의 대답에 데스브링거가 기함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어쩔텐가. 이미 지난 일인 것을. 청년의 귀가 시무룩하게 쳐지며 삽시간에 분위기가 눅눅해지기 시작했다.

 

방의 습도가 높아지는 것도 무시한 채 마이스터가 물었다.

 

“그건 그렇고, 너 자신의 감각은 어때?”

 

“…….”

 

“이봐.”

 

악마기사의 시선은 이따금씩 자신의 부은 다리에 쏠려 있었다. 대체 혼자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순식간에 불만에 찬 마이스터가 악마기사의 눈앞에 손을 흔들어 보이자,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맞췄다.

 

‘어쩌라고.’

 

마이스터는 입으로 내뱉지 않고 생각했다. 그는 표정만으로도 욕을 전할 수 있었다.

 

뭐해. 흔하디 흔한 멍청이1처럼.

 

그의 얼굴이 그리 말하고 있음에 악마기사는 자신의 친구를 떠올리다가 입을 열었다.

 

“…전보다, 전투 효율이 올랐다.”

 

“…….”

 

그런 대답을 바란건 아니었는데. 이번엔 마이스터의 지능이 머저리1로 순간 격하되고 말았다. 잠시 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침묵을 지키는 이를 앞에 둔 채 악마기사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모르겠군.”

 

“…뭐가.”

 

“이 상태를 이어갈 수 있다면 좋겠으나….”

 

“잠깐, 그게 무슨 소리인가?”

 

아크메이지가 낯빛을 굳히며 허리를 굽혀 앉아 있던 악마기사와 눈을 맞추었다.

 

“이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고?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자네? 며칠간 잠을 자지도, 먹지도 못했음에도 멀쩡하지 않은가. 인간은 그런 상태로 살아갈 수 없네.”

 

“…….”

 

“장담하지. 이 상태를 지속한다면 자네의 정신이 먼저 무너지고 말 것이네. 어떻게든 되돌릴 방법을 찾아내야 해. 효율을 따질 때가 아니란 말이네.”

 

마법사의 걱정은 합리적이고 정당했다. 무척이나 정론이어서 반박할 여지조차도 없었다.

 

“……하.”

 

그에 악마기사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가 화가 났다고 생각했는지, 또 다시 뛰쳐나갈까 하는 조급함에 아크메이지가 다급히 말을 덧붙였다.

 

“물론 자네의 정신력을 격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네. 하지만….”

 

하지만 역효과였다.

 

악마기사가 울컥, 고개를 들어올리며 아크메이지를 향해 외쳤다.

 

“나 또한 그런 의미의 한숨이 아니었다…!”

 

여유없이 구석에 몰린 듯 눈을 질끈 감고 쥐어짜내듯 말하는 악마기사의 모습에,

 

“…….”

 

아크메이지는 순간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정확히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

 

아크메이지는 인간적으로 악마기사에게 무지했으니, 그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조차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야, 이미 문제 그 자체가 되어 살아가는 이에게 ‘문제가 뭐냐.‘ 고 물을 정도로 인간관계에 서툴었으니.

 

방안에 숨막힐 듯한 정적이 일었다. 오직 악마기사 한 사람분의 거친 숨소리 만이 공허를 메웠다.

 

그는 굳이 숨쉴 필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원인을 모르는 이상, 동료들의 그의 울분을 해결해줄 수가 없었다.

 

몰랐다. 무지하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게 그 무엇도 없다.

 

아크메이지는 제 몸을 잠식하는 무력감에 지독히도 익숙히 절여진 채 고개를 떨구었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고작.

 

“…미안하네.”

 

“…….”

 

닿지 못할 사과뿐이었다.

 

“사과하겠네. 자네를 오해해서 미안하네.”

 

“…….”

 

그에 대한 반응으로 악마기사는 구부렸던 상체를 펴고,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 번만 설명할 테니 똑똑히 들어라.”

 

말끝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는 유독 이질적으로 모습이 변한 뒤에, 그 답지 않은 인간적인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게 마치, 한계에 다다른 경고등을 울리는 것만 같아서.

 

일행들은 악마기사의 말을 경청하고자 하는 반면,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겪은 바에 의해, 그리고 내 안의 악마와 나눈 의견을 통해 내가 추측한 예상만을 읊겠다. 내 처우에 대한 결정은 그 이후다.”

 

“…….”

 

그 누구도 ‘악마와의 대화‘ 라는 말을 꼬집지 않고 다만 그의 말을 들었다. 그 사실에 악마기사가 자신도 모르게 조금 누그러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악마기사’는 이 전투에서 죽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지 않았던 악마에 의해 생물에서 무생물로 본질이 바뀌었음에도, 내 혼은 아직 이 그릇에 머물고 있지. 악마를 봉인하는 누름돌로써.”

 

“…….”

 

“허나 대악마의 힘으로 조차 이 몸은 오래 유지될 수 없다. 물리적으로는 무적이나 정신적인 충격을 받으면 쉽게 무너져버릴 테니. 악마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면 해결 될 문제이나, 너희들도 이미 알듯이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

 

“나는 내 감정을 조절 할 수 없다.”

 

그가 제 무릎에 손을 떨어뜨리며 말했다. 악마기사의 결론은 당연한 지론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감정을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말을 내뱉는 당사자가 악마기사라는 점에서, 일행들은….

 

“본래대로 돌아가긴 고사하고, 이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 해낼 수 조차 없단 말이다.”

 

“…….”

 

일행들은 악마기사가 고통스레 자신의 명치 부근을 움켜쥐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내 처우를 결정해라.”

 

그래. 항상 그랬던 것처럼.

 

나를 지독하게 슬프게 만들어.

 

내 발목을 붙잡고 우울의 바다 속으로 끌고 들어가.

 

내가 정을 내준 너희라면 충분히 넘치도록 가능할 테니. 나를 익사시킬 수 있을 것이다.

 

 

 

***

 

 

 

 

 

 

 

 

하지만 그와 동시에 거절당했다.

 

“왜 결론이 그렇게 되는 건데?”

 

‘왜 결론이 그렇게 되는 건데?’

 

“…….”

 

두 존재의 목소리가 겹쳐 들렸던 탓에 혼란이 왔던 나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한 명은 마이스터, 다른 한 명은 메피스토였다.

 

‘내가 그러라고 중요한 정보를 알려준 줄 아냐?! 이 미친 새끼가!’

 

메피스토가 하도 큰소리로 왁왁대기에 마이스터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청각을 집중하여 밖으로 애써 주의를 돌렸다.

 

“…주사, 는 바늘이 안들어가서 안 되고, 잠은… 아, 피로를 느끼지 못한다고 했지. 그럼 이거라도 먹어봐.”

 

“무슨… 큽!”

 

“뭐, 뭘 먹이시는 겁니까!”

 

무슨 동물에게 억지로 약을 먹이듯 입을 벌리고 목구멍으로 알약을 쑤셔넣는 마이스터의 행동에 나와 일행들이 당황한 것도 잠시,

 

꿀꺽.

 

기어코 식도를 타고 알약이 뒤로 넘어갔다. 나는 콜록이며 물었다.

 

“…무슨 약이냐. 독?”

 

“미쳤냐, 내가? 단순한 수면제야. 멘탈 회복에는 잠이 최고지. 화학적으로 재워버리면 좀 제정신이 돌아오지 않을까 싶은데.”

 

“…난 지금도 제정신이다.”

 

“응, 아니야.”

 

하지만 그런 마이스터의 희망은 무산되었다. 뱃속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이물감에 결국 나는 알약을 도로 토해내고 말았다. 일행들이 전하는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끼이익 거리는 이명에 가려져 들리지 않았다.

 

“쿨럭, 큭…. 흐,”

 

“아…. 젠장맞을.”

 

내가 토해낸 알약을 주워서 확인한 마이스터가 중얼거렸다.

 

“…소화액이 전혀 묻어 있지 않잖아.”

 

“…….”

 

“내장 활동이 없다고. 이 미친 새끼야.”

 

“…….”

 

나를 돌아보는 마이스터의 눈빛이 조금 돌아있었다. 아니 왜 나한테 그래. 침묵하는 나에게 메피스토가 말했다.

 

‘내가 움직일 수 있도록 길을 내준 한계는 겉의 관절뿐이야.’

 

“…….”

 

그래. 나는 오로지 지금 악마의 힘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움직이고 있는 거구나. 비로소 실감이 났다.

 

…하지만 그게 뭐가 어떻다고. 죽는 것보다는 낫지.

 

“전보다 훨씬 낫지 않나.”

 

“…….”

 

“적어도 당분간은. 다칠 일도, 식재료를 낭비할 일도 없으니.”

 

“…….”

 

“더 나은 해결책이 없다면, 더 이상의 시간낭비는 그만두지.”

 

나는 간단히 내 몸에 대한 우려를 내치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일행들은 내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못했다.

 

하지만 안다. 분명 만두들은 포기하지 않고 내게 달라붙겠지. 어쩌면 서로 만두라는 단어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지도 모르고, 어쩌면 정답까지 도달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내가 바라는 일이었다.

 

‘…너, 대체 무슨 짓을 할 작정이야?’

 

“…….”

 

글쎄.

 

나는 메피스토의 질문에 굳이 답하지 않았다.

 

 

 

 

 

 

 

 

‘…모른다.’

 

인퀴지터는 악마기사의 속과 겉이 다른 부정을 떠올렸다. 그는 분명 ‘김치만두’라는 단어를 모른다고 했으나, 인퀴지터는 그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으나, 마치 더 물어봐달라고 청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으니까.

 

마치, 스스로 알아내 보라고 하는 듯한….

 

그에 인퀴지터는 제 앞에서 앞서가는 데스브링거를 불러세웠다.

 

“이봐. 망종.”

 

“…뭡니까요?”

 

“…….”

 

“…진짜 뭡니까? 샌님답지 않게 우물쭈물.”

 

인퀴지터는 데스브링거에게 묻는 게 과연 옳은 선택일지 잠시 고민했다. 폭넓은 지식은 아크메이지 또한 갖추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왠지 그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인퀴지터는 결국 입을 열었다.

 

“…‘김치만두‘ 가 무슨 뜻인지 알고 있나?”

 

“…!”

 

데스브링거의 눈이 커졌다. 그 반응은 ‘모른다’ 보다는 ‘놀라움’에 가까워서, 인퀴지터는 다행히 불안감을 도로 삼켜낼 수 있었다.

 

“…저도 그 의미 자체는 모릅니다요.”

 

“그런가. 하지만 걸리는 게 있나보군.”

 

“크흠, 웬일로 눈치 없는 샌님이…. 아니, 어쨌든, 딱 한번…. 나리에게서 그런 비슷한 단어를 들어봤습니다.”

 

“…….”

 

역시 그랬나. 인퀴지터는 조급한 마음에 답을 재촉했다.

 

“정확히 언제 악마기사가 그리 말씀하셨지?”

 

“…아, 그건….”

 

데스브링거의 동공이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귀를 늘어뜨리며 천천히 대답했다.

 

“예전, 아유 힌에서….”

 

“…아.”

 

그녀 자신도 모르게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뒤에 이어질 답을 알 것 같았다.

 

“나리가 자신의 배에 칼을 찔러 넣기 바로 전에…. 저를 보시더니 ‘고기만두’… 라고.”

 

“…….”

 

고기만두라.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내겐 김치만두라고 하셨다만….”

 

“…뭔 뜻인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뒤에 두 글자가 겹치네요. 제가 알고 있는 것도 별로 없어서 죄송합니다.”

 

“사과할 필요까진 없다.”

 

인퀴지터는 아쉬움을 삼키며 복도를 떠났다. 아무런 수확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 다행이리라. 한 가지 단서를 얻은 것이다.

 

그 후 인퀴지터가 베르세르크와 아크메이지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해봤으나, 데스브링거와는 달리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에 인퀴지터는 데스브링거와 함께 둘의 공통점을 찾기 시작했다.

 

성별, 아니다,

 

출신, 다르다.

 

성격. 극히 상반된다.

 

“…….”

 

결국 두 사람이 찾은 공통점이란 오직 한 가지 뿐이었다.

 

연령대.

 

그 둘은 동료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린 두 사람이었던 것이다.

 

데스브링거가 제 솜털 같은 수염이 난 턱을 쓸며 말했다.

 

“…그러고보면, 아닌척 하셔도 나리는 덜 자란 아이들에게 확연히 약하셨었죠.”

 

“…그랬지.”

 

둘은 떨떠름한 얼굴을 애써 관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악마기사의 고향에만 있었던 풍습일지도 몰랐다. 어린아이에게 아명을 지어주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정답 아닌 정답에 상당히 근접한 그들은, 이번엔 함께 악마기사를 찾아가기로 했다.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악마기사는 대명장과 조금 이야기를 더 나누다가 뒤늦게 방 안에서 나온 참이었다.

 

이제 단어의 의미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둘에게 이런 별명을 지어준 악마기사의 심정이 더욱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악마기사!”

 

“…….”

 

방에서 막 나오는 악마기사가 저희 둘을 돌아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에 미세한 금이 가게 하는 일은,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저희 둘을 김치만두, 고기만두라고 부르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

 

“왁, 샌님! 너무 직접적이지 않습니까요?!”

 

“하지만, 진심으로 궁금하다.”

 

“그건, 저도 그렇지만….”

 

둘은 서로 대화를 나누느라 아쉽게도 악마기사의 입이 멍하니 벌어져 있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난 그렇게 부른 기억이 없다만.”

 

만두들이 제 얼굴을 보기전, 늦지않게 표정을 수습한 악마기사가 대답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저 속으로만 그리 생각했을 뿐, 아유 힌 때에는 기억이 날아가는 바람에 몰랐고, 인퀴지터는 그녀의 꿈속에서 벌어진 일이었으니 악마기사가 모르는 것이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틀림없이 그리 부르셨습니다.”

 

“…….”

 

무구히 묻는 순수한 얼굴이 앳되 보였다. 붉은 머리를 넘긴 용사의 얼굴엔 여즉 주근깨가 가득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악마기사는 문득 자신이 이 세상을 선택했음을 떠올렸다. 돌아갈 가능성이 낮아졌다 했던가.

 

그렇다면, 조금은 괜찮을 것이다.

 

“…그리 궁금한가.”

 

“네! 궁금합니다.”

 

여지를 주는 대답에 강아지처럼 빈틈을 파고들어 마음속에 기어코 자리잡는 인퀴지터의 모습에, 악마기사는 속으로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 부탁을 들어주면 알려주도록 하겠다.”

 

“……!!!”

 

내 답에 만두 둘이 입을 벌리며 눈을 크게 뜨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답지 않은 행동에 상당히 놀란 모양이다. 저번처럼 악마로 몰리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까.

 

“아, 악마기사의 부탁…! 어어, 크흠! 뭐든 들어드리겠습니다. 말씀해주십시오!”

 

“…….”

 

악마기사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음에 둘은 또 심장이 덜걱거리고 말았다. 물론 악마기사 본인은 속으로 ‘그렇게 쉽게 들어주는 거 아니다…. 현대에서 태어났으면 큰일 나겠네.’ 라는 실없는 생각을 하는 줄도 모른채.

 

“…사제.”

 

“네, 네!”

 

이봐, 머저리, 네놈,

 

이런 호칭이 아닌 제대로 된 호칭이 악마기사의 입에서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인퀴지터가 딸꾹거리며 대답했다.

 

“내 부탁은 단 하나다.”

 

“…….”

 

“검을 배워라.”

 

“네! 알겠습니…?”

 

잠깐.

 

“…자, 잘 못들었습니다?”

 

고장난 인퀴지터에게 악마기사가 재차 말했다.

 

“검을 배워라. 사제.”

 

“…….”

 

인퀴지터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물었다.

 

“…이유를 물어도, 괜찮겠습니까?”

 

“이유는, 용사. 네가 검의 길에 어느 정도 숙달되면 알려주도록 하지.”

 

“…….”

 

“만족스러운 답이 되었나?”

 

“…예. 다만….”

 

인퀴지터가 망설이다가 물었다.

 

“아, 악마기사께 배워도 되겠습니까?”

 

“…….”

 

하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이럴 줄 알았다는 지극히 담담한 어조였다.

 

“나는 못한다.”

 

안 된다가 아니라, 못한다였다.

 

“검술은 투사에게 배워라. 네게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인퀴지터와, 상황을 지켜보던 데스브링거가 자리를 떴다. 그들은 악마기사의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불안한 기색을 더는 숨기지 못했다.

 

그들은 끝까지 물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 파티의 검사는 당신이거늘.

 

어째서 용사가 검을 배워야 하는 것인지. 당신은 정녕 우릴 떠날 생각인건지.

 

감히 묻지 못했었으나, 함에도 물어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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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quaRyuichi Sakam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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