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gger Warning
주컨곤 1부까지의 스포일러, 자해 묘사
[참으로 아깝구나.]
온 세상의 부를 거머쥔 이가 연극하듯 과장스럽게 탄식했다.
[너 같은 자가 내 보석이 된다면 정말이지 만족스러웠을 텐데.]
물론 거짓말이다. 세상은 커녕 지옥까지 포함하여 모든 부를 제 주머니 안에 쓸어 담는다 할지라도 결코 만족하지 못할 공허가 중얼거렸다. 입 구멍만 욕심스레 뻥 뚫린 채 뱃속은 텅 빈 아귀가 말했다.
허나 어차피 마를 거머쥐었으니 거짓을 입에 담는다 한들 어떠랴. 판데모니엄은 우둔한 이들을 속여 제물을 취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점에서 사기와 기만의 좌 였던 메피스토펠레스와 자신은 어쩌면 조금 닮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를 보석으로 연마한다면 어떤 형태일까.’
와드득!
탐욕은 제 거대한 손으로 개미를 짓밟듯, 분노의 그릇을 마치 장난감처럼 우그러뜨리며 생각했다. 자신이 현저히 밀리고 있는 와중에서도 그 메피스토에게서 통제권을 빼앗기지 않는다니 과연 보통의 인간은 아닐 듯싶다. 생긴 것도 제법 괜찮고.
반질반질 첨예한 낯이 부드러운 인간의 피부가 아니라, 무생물의 광채를 머금게 된다면 어찌 될 터인가. 그것은 비죽 솟아 제게 다가오는 모든 이들을 상처 입히는 난폭한 고슴도치를 닮았을 지도 모른다.
…아니, 아니다.
탐욕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몽상을 정정했다.
저것은 광포한 공격성을 지니되 지극히 이지가 살아 숨 쉬는 그릇이다. 그의 별칭이 ‘용사의 검’ 이라 했던가. 어쩌면 제 주인의 앞에 놓인 모든 적을 심판하는 날카로이 벼려진 검 또한 어울릴 것이다.
그러니, 저것을 값진 무생물로 빚어내면 어떠한 결과물이 나올지 탐욕은 궁금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지식을 탐하는 것 또한 어찌 보면 오만이자 욕심이니.
그러니 내 공허함을 조금이라도 채워 줘봐. 메피스토. 인간 시절부터 너는 항상 내 기대보다 더 큰 업적을 이룩하곤 했으니.
[아하하…!]
제 본질에 닿는 호기심에 유쾌함이 일어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래, 인간의 영혼과 악마의 그릇이 뒤섞이고 동시에 결합해 원소로 이루어진 하나의 물질이 되는 것이다. 그 결과물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런 특별한 것을 갖게 된다면, 생각보다 오랫동안 질리지 않고 감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퍼엉!
그릇이 마지막 힘을 다해 쏘아올린 신호탄이 하늘에서 요란벅적하게 반짝였다. 그 빛으로 인해 처하게 될 마몬의 상황 자체는 좋지 않았으나, 이미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욕구를 자극받은 탐욕은 다채로운 빛깔에 이지가 흐려진 채 전율에 몸을 떨 뿐이었다.
판데모니엄은 저도 모르게 가쁜 숨을 내쉬며 기대감에 홍조를 띄웠다. 그리곤 그릇을 짓누르고 있던 손을 치우고, 의식을 잃고 인형처럼 늘어진 인간을 집게손가락으로 집어 올렸다.
그 모습이 마치 형대의 밧줄에 목이 걸린 죄수와도 같았다. 힘없이 달랑거리는 다리, 축 늘어뜨린 고개. 마치 허물어진 시체 같다. 허나 가는 숨이 이어지고 있었다. 희미하지만 맥박도 여즉 뛰고 있다.
탐욕은 욕심어린 미소를 입안 가득히 지어내며 제 말을 듣고 있을 분노를 달래어 주었다. 달랜다기엔 지나치게 얄미운 어조였으나 어차피 상대는 무력했으니 이처럼 놀려줄 기회도 흔치 않았다.
[더 이상 주도권을 잡지 못해 안달내지 않아도 괜찮아, 메피스토.]
“…….”
[너 처럼 강대함과 동시에 추악한 이가 또 있을까. 하지만 이제 열등감과 자학에 못 이겨 분노를 세상에 내지르지 않아도 돼. 내가 네 본질을 이 이상 가늠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반짝이고 값지게 변화시켜 줄 테니.]
한 때는 모든 인간이 너를 배척함에 슬픔을 느끼던 날도 있었다지. 하지만 이젠 모든 인간이 너를 탐하게 되리라.
이 또한 분노가 직접 뛰쳐나오는 한 이루어질 수 없는 미래였으나, 뭐 어떠랴. 그릇이 다 죽어갈때까지도 주도권을 거머쥐지 못한 그의 패배였다.
사실 속임수일 가능성 또한 충분했지만, 이미 욕심으로 가슴을 한껏 부풀린 탐욕은 머릿속 터럭만치의 의심마저 지워버렸다. 이성에 광기어린 지우개가 스치고 간 뒤 가루가 된 잔상만이 남아 있을 뿐.
“…….”
그리고 당연히도, 의식을 잃은 그릇에게서 되돌아오는 반응은 없다. 판데모니엄은 그의 위로 갈망하듯 옅게 떨리는 거미같은 손가락을 뻗기 시작했다. 이내 용암이 거미줄처럼 흘러내려 그릇의 육신을 옭아매었다.
흐르는 불은 더 이상 ‘뜨겁다’라는 감각조차도 마비시켜오는 독과도 같았다. 극한의 불길에 인간의 근육은 작게 오그라들고, 통각조차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육신은 망가져 내렸다.
하지만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과정이다. 창조에는 그 값어치만큼의 파괴 또한 뒤따르는 법.
‘…마몬! 이 여우 같은 장사치 자식이!’
메피스토펠레스가 상대방에게 들리지도 않을 분노를 터뜨리며 으르렁거렸다.
‘야! 내말 들려?! 내가 전부 없애준다니까!’
…….
‘…이런, 씨,’
그릇에게서 여즉 답이 없자 메피스토는 간신히 욕지거리를 삼켜냈다. 그레트헨은 몰라도 자신은 이런 곳에서 탐욕의 장난감으로 전락하는 건 사양이다.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또 그 짓거리를 당할 것 같아?’
뒤지더라도 마몬, 저 새끼는 내가 죽이고 간다. 그런 심정으로 메피스토는 이를 바득 갈며 자신의 계약자에게 마지막 딜을 걸었다.
결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말이다.
그의 계약자를 향한 종용은, 분노라는 그 이름 값 그대로였다. 숫제 제 광포함과 단단함만을 믿고서 뒤를 생각하지 않고 내달리는 저 먼 대륙의 물소(Buffalo) 와도 같은 직진이었다. 계약자는 그의 행태가 매우 못마땅했으나 결국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상황은 악마의 제안, 즉 썩은 동아줄에라도 매달려야 할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이었으므로.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개판이리라. 계약자는 더 이상 이 어지러운 수라장 속에 제 욕심으로 끌어들인 선한 영혼을 엮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잠깐! 이제 저분은 관계없잖아. 돌려 보내드려!」
‘이제 와서 같잖게 점잖은 척은! 알량한 위선 따윈 집어치우고 잠자코 기다려. 네놈이 원하는 일도 당장 계약으로 묶인 ’우리‘가 살아남아야 가능한 일이니까.’
「…….」
계약자는 입술을 짓씹으며 그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그런 그를 힐끗 쳐다본 메피스토는 일부러 코웃음을 쳐주고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자 어두운 공간 속에 적막이 흘렀다. 가장 수다스럽던 이가 사라졌으니 당연했다. 계약자는 안절부절 못하며 눈을 감고 축 늘어져 있는 지친 영혼의 곁을 맴돌았다.
‘…….‘
「…어?」
바스락….
헌데, 아직 잠들어 있어야 할 평온한 세계의 별꽃이 바람에 흔들렸다. 계약자는 무의미한 발걸음을 멈추곤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리는 영혼을 바라보았다.
그가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닫자 계약자는 소스라쳤다. 아직, 아직은 안 된다.
‘…거기 누구 있어?‘
자각하면 안 된단 말이다!
「자, 잠깐...! 잠깐만요.」
‘.....?’
「안 돼! 눈 뜨지 말아요. 가만히...」
계약자는 당황스러운 심정으로 부드러운 영혼의 눈을 조심스럽게 가렸다. 속눈썹이 사락 손바닥에 스치는 느낌이 들다가, 이내 영혼이 양순하게 눈을 감았다. 계약자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버러지에게 바깥은 맡겨뒀으니 쉬고 계세요. 지금 깨어나면 분명, 많이 아프실 거예요.」
‘……?’
고개를 갸웃하는 영혼의 눈을 가린 계약자의 손이 간절함으로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이 저주는… 저희가 어떻게든 해 볼게요. 수습도 마찬가지로요. 당신은 지금껏 충분히 했어요. 이제 돌아가도 돼요.」
‘…….’
「만약 저 쓰레기 자식이 실패해서 육신이 무생물이 되어버린다고 해도 괜찮아요. 거기서부턴 제가 감당하겠습니다. 당신은 이만 소중한 이들의 품으로 돌아가세요.」
‘…!’
영혼이 그 말에 처음으로 어깨를 움찔했다. 별을 닮아 밝게 빛나는 눈이 가려진 영혼의 입이 달싹거렸다.
‘…그럼, 베르뮈헨은?’
「……!」
영혼의 무구한 질문에 계약자가 떨리는 헛숨을 집어삼켰다.
‘내가 없으면 이곳은 어떻게 되는데?’
「…….」
‘왜 대답을 해주지 않아? 많이 심각한거야?’
그 물음에 뭐라 답해야 할까. 계약자는 고개를 떨구며 말하길 망설였다.
그 잠시의 침묵을 참지 못하고 영혼이 고개를 내저었다.
‘…잠깐만. 아직 돌아갈 수 없어. 내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아.’
「하지만, 당신은…!」
계약자가 다급히 말리려 했으나 소용없는 행위였다. 영혼은 강경히 그의 손을 제 얼굴에서 떼어낸 뒤 품에서 벗어났다.
「잠깐…!」
이내 영혼의 가슴속에서 부드러운 의지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인동 덩굴처럼 생기를 머금고 속수무책으로 생생히 솟아오르는 모습에 계약자는 입술을 꽉 깨물며 눈물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떨리는 턱 밑으로 소금물이 방울져 무릎까지 잠겨있는 바다 속으로 스며들었다.
간수를 흡수한 식물은 죽어가긴 커녕, 오히려 더욱 생기를 머금고 야속하게도 크게 자라 올랐다.
슬픔과 우울을 원동력 삼아 움직이는 여느 다정한 길잡이처럼.
투둑….
「윽…!」
영혼이 제 손을 거절함과 동시에 불꽃을 봉인하고 있던 사슬이 일부 끊어졌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아직은 되돌릴 수 있었다. 그의 기억을 지운다면.
하지만….
하지만 그게, 정말 저 영혼을 위한 길일까?
계약자는 혼란과 의문으로 떨리는 어깨에 제 손을 올린 뒤 힘을 주어 내리눌렀다. 그리고 뒤늦게나마 그를 간절히 설득하기 시작했다.
「돌아갈 수 있는 확실한 기회는 지금 뿐이에요. 여긴 당신의 세상도 아니잖아요.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지금 안가면 영영 못 돌아갈 지도 모른다고요.」
‘…….’
타당한 설득에도 영혼은 요지부동이다. 그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대꾸하지 않는 모습에 망연한 심정이 되고 말았다.
계약자가 간절한 별꽃의 외침을 무시할 때, 그 또한 이런 심정이었을까.
어쩌면 더욱 끔찍했으리라. 계약자는 그 무엇도 알려주지 않았으니.
제 잘못을 짊어진 이가 눈을 질끈 감았다. 입을 여는 게 죽는 것보다도 어려웠다. 용서 따윈 바라지 않았으나, 반드시 전해야 할 것이 있다.
「그, 그리고… 저는.」
‘…….’
발언할 자격을 가지지 못한 죄인의 어깨는 축 쳐져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보였다.
함에도 그 무게를 저울추 삼아 움직였다. 메트로놈마냥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왕복운동 같았지만서도 어쩔 수 없는 저항이다. 그리 심지가 굳세었던 길잡이별이 저 때문에 자신의 길만은 찾지 못하고 힘없이 비틀거리며 방황하는 모습을 여실히 지켜봤기 때문에 더더욱.
간신히 계약자가 떨리는 제 입술을 열었다. 자신의 심정 따윈 저런 영혼이 알 바 아닌 하찮은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래. 전해야 할 말이 있다.
「저는… 후회합니다.」
악인의 감정 따위는 그 본인마저도 궁금하지 않았으나, 분명 눈앞의 이 다정한 영혼은 제 고해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이?’
아니나 다를까, 이성이 아닌 감정을 담아 전달하자 처음으로 영혼이 계약자를 향해 반응했다.
세상에 버려진 한낱 미물일 뿐인 자신의 심정을, 저 이가 알게 되어 조금이라도 그 슬픔을 달랠 수 있다면. 이런 변명을 내뱉는 제 자신의 역겨움마저도 충분히 견딜 만 했다.
「당신 같은 분이 오실 줄 미리 알았더라면, 저는….」
‘…….’
후회만큼 무용한 것이 없다 생각했었다. 이미 엎지른 물을 다시 잔에 담으려 노력하는 것만큼 미련한 짓이라 여겼다.
「왜 하필 당신이었던 거죠? 당신은 이런 곳에 와서는 안됐어. 이렇게 갇혀선 안 되는 거였어.」
저 때문에 아무런 상관없는 타인이 다치고, 슬퍼하고, 굳세던 심지가 갈대처럼 흔들리는 모습을 지켜보기란. 생각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웠다. 힘겨웠다. 단단히 각오했음에도 그랬다.
진심으로 흐르는 제 눈물조차도 역겹고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
하지만 당신이 내 눈물에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좋다.
계약자는 슬픔으로 고인 바다에 제 눈물을 떨구며 사과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부디 저를 원망하세요.」
‘……하.’
허무함일까. 그도 아니면 한심함일까. 그 숨의 의미를 알 길이 없었다.
가볍게 한숨을 내쉰 영혼이 계약자를 향해 다가오며 물었다. 여즉 눈을 감은 채였다.
손을 뿌리쳤을지언정 계약자의 말은 믿어준 것이다.
찰박, 찰박….
그리움으로 고인 소금물이 걸음에 따라 약하게 파도쳤다.
영혼은 계약자를 향해 걸어오며 물었다.
‘...지금이 아니면, 나는 영원히 못 돌아가?’
「…그건 아니지만, 가능성이 더욱 낮아져요.」
‘…….’
계약자의 대답에 잠시 침묵을 지키던 영혼이 말했다.
‘그럼 됐어. 괜찮아.’
「…네?」
‘괜찮으니 날 이용해서 뭐든 해봐. 애초에 그럴 용도로 데려온 거잖아.’
「어, 어째서…?」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이, 왜 스스로를 물건 취급하는가.
계약자의 의문에 영혼이 답했다.
뭣도 모르고 끌려왔다지만, 이 세상에는 이미 사랑해버린 생명들이 너무 많아서.
그러니, 적어도 되돌아갈 때만큼은 선택권을 온전히 내게 쥐여 주었으면 좋겠다.
이 세상으로 나를 끌고 온 누군가가 정말 진심으로 내게 미안하다면. 그래야 함이 옳다고. 그게 나에게 사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영혼은 그리 말했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어디 한 번 마음껏 이용해봐. 악마를 봉인할 누름돌로 사용하든, 열쇠가 없는 자물쇠로 사용하든, 용사의 검으로 사용하든….’
영혼은 그리 말하고 있었다.
세상의 존속을 위해 자신을 물건 다루듯이 사용해도 좋다고.
「…흐윽.」
그 주장을 듣고 있자니 끝내 물기어린 울음소리가 계약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얼핏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같이 들렸다. 무심코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에 머리 위로 손을 뻗으려 했으나, 죄인은 영혼의 손길을 피했다. 스르륵, 눈앞에 서있던 자가 급히 손이 닿지 않는 어둠 속으로 물러난다.
‘.....’
눈감은 영혼의 손이 허공을 스쳤다. 아쉬움을 느끼며 눈을 떠서 확인하고 싶다는 궁금증이 일었으나, 상대의 말마따나 아직은 자신이 눈을 뜨고 주도권을 움켜쥘 때가 아니었다. 바깥에서 활발히 제 할 일을 해내는 악마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지독한 놈이었음에도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말이 있던가. 지금만큼은 제 안의 악마가 힘을 내주길 바라며 영혼이 한숨을 담아 죄인을 호명했다.
‘쓰다듬지 않을 테니, 가까이 다가와 봐.’
「.....」
‘눈을 뜰 수 없으니, 네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어서 그래. 이것도 안 돼?’
영혼은 아이 앞에서 달콤한 사탕을 흔들 듯 제 손을 들어보였다. 그에 어둠에 갇힌 수감자가 머뭇거리며 영혼의 바로 앞까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찰박. 다시금 소금물이 넘실거렸다.
영혼은 아무 말 없이 손을 뻗어 제 앞에 서있는 자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여느 사람과 같은 코, 입술, 볼, 눈, 속눈썹이 느껴졌다.
부스스한 머리카락. 목을 타고 손을 내려오니 느껴지는 두터운 제복. 마치 성인처럼 넓게 벌어진 어깨였으나 아이처럼 떨려오는 숨결.
‘…….’
거기에, 제 자신보다 작은 신장. 기사 집안에서 자라 기본적인 뼈대가 잡혀있으나 아직 성장기가 멈추지 않은 관절.
‘…….’
「저, 저기…?」
완전히 발달하지 못한 팔 근육, 아직 굳은살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해 여기저기 튼 손, 동그랗고 작은 머리통. 변성기가 갓 지난 어리숙한 목소리.
‘…하.’
모든 증거가 눈앞의 상대가 몸만 큰 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음에, 허탈한 숨이 흘러나왔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영혼은 더 이상 그를 죄인이라 칭할 수가 없었다.
‘…그래.’
「…?」
‘그랬구나.’
영혼은 그제야 후련하게 웃을 수 있었다.
‘…이제 괜찮아. 귀찮게 해서 미안.’
「아뇨! 저, 전 괜찮습니다.」
다정한 사과에 쑥스럽고 어색해하는, 여느 아이들과 같은 당황한 목소리에 영혼의 입꼬리가 조금 더 올라갔다.
이번만큼은 온전한 제 자신의 선택이었으므로.
보답이나 보상 따위는 더 이상 필요 없었다.


